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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천골에 신학교를 짓다

남북감리교회가 합동으로 운영한다고 감리교협성신학교(Methodist Union Theological Seminary)로 명명한 남·북 감리회 선교부는 독립문 서편 규장각 건물 5~6동과 부지 5천여 평을 미환 6000달러에 매입했습니다. 규장각 건물을 임시 교실, 기숙사, 도서관으로 수리하고 1911년 9월 27일 역사적인 입당식을 가졌습니다. 이로써 1887년 시작된 대한민국 최초의 신학교, 감리교신학대학교는 이동신학교 시대를 마감하고 ‘냉천동 신학교 시대’를 열게 되었습니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4월, 부산에 ‘피난 신학교’를 열었습니다.

“1951년 4월 선교사들의 지원으로 부산진역 앞 수정동 551번지에 있던 한옥 채를 구입해 학교를 열었다. 일제 강점기 ‘제법 살던 부자’집이었는데 40여 평되는 본채는 남학생 기숙사 교실 겸 기숙사로 사용하였고 별채는 여학생 기숙사로 사용했고 자동차 두 대 정도 들어갈 수 있는 마당이 학생들의 유일한 운동장이었다. 교수들도 남녀로 나뉘어 학생들과 함께 생활했다. -중략- 부산에서 신학교가 다시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들은 학생들이 몰려오고 새로 입학하려는 학생들까지 와서 많을 때는 1백여 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몰려들어 교실이 비좁게 되었다.”
감신소식 제36호, 이덕주 교수의 냉천골 감신 이야기 18회 중(1999. 6. 8.)

냉천동에 세워진 지식과 영성의 공간

1910년 냉천동 부지 구입 감리교협성신학교 건축을 시작으로 1915년 갬블기념당, 1951년 부산 피난신학교, 1960년 대학원 건물 신축, 1981년 김용옥 학장 기념관, 1982년 종합관, 1998년 백주년기념관, 2003년 웨슬리채플, 2005년 장천생활관 등이 준공되었고, 이 건물에 연구실, 스터디룸, 세미나실, 예배실 등 다양한 공간들이 수많은 후원자의 사랑으로 조성되었습니다.

공간에 여러분의 기도와 소망을 담습니다

1910년 냉천동 부지를 구입하던 미국 남북감리교회의 기도와 6.25 전쟁의 참상 속에 피해 찾은 부산에서조차 피난신학교를 연 감리교회의 소망은 그 이후 1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후원자의 사랑을 통해 감신에 실현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만들어주신 공간에 담긴 기도와 소망은 이곳을 딛고 걷는 모든 신학생들에게 전해져 한국감리교회의 미래가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