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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시 - 우리의 본성, 그 상태는 얼마나 슬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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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등록일
- 2020-01-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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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sad our state by nature is! 우리의 본성, 그 상태는 얼마나 슬픈지!
Charles Wesley
How sad our state by nature is! 우리의 본성, 그 상태는 얼마나 슬픈지!
Our sin, how deep it stains! 우리의 죄, 그 죄는 얼마나 더러운지!
And Satan binds our captive souls 사탄이 우리의 영혼을 포획해 꽁꽁 묶었네,
Fast in his slavish chains. 노예의 사슬로 단단히.
But there’s a voice of sovereign grace 하지만 우리 왕의 은총의 목소리가 들리네,
Sounds from the sacred word: 성스러운 말씀의 소리가.
“Ho, ye despairing sinners, come, “오, 너희 절망한 죄인들아,
And trust upon the Lord!” 와서 주님을 믿어라!”
My soul obeys the’ Almighty’s call, 내 영혼은 전지전능한 분의 부름에 복종해
And runs to this relief: 구원받으려 달려가네.
I would believe thy promise, Lord; 주님, 전 당신의 약속을 믿을 겁니다,
O help my unbelief! 제 불신앙을 도와주소서!
To the blest fountain of thy blood, 성육하신 하나님, 저는,
Incarnate God, I fly; 당신이 흘리신 피의 축복받은 샘물로 날아갑니다.
Here let me wash my spotted soul 여기서 제 더러워진 영혼을 씻게 해 주소서,
From sins of deepest dye 깊이깊이 채색된 죄로부터.
A guilty, weak, and helpless worm, 죄인이자, 연약하고 힘없는 벌레인 제가,
Into thy hands I fall; 당신의 손 안으로 떨어집니다.
Be thou my strength and rightousness, 제 힘이자 의로움이 되어주소서.
My saviour, and my all. 구세주이자 제 전부가 되어주소서.
웨슬리 형제는 옥스퍼드 대학 시절 신성회(Holy Club)에서 회원들과 함께 죄수들을 방문해 전도하고 돌보는 사역을 했습니다. 1738년 찰스는 회심을 경험한 후 뉴게이트 감옥을 방문해 죄수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전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구원의 말씀을 들은 죄수들이 눈물 흘리며 구원을 확신하는 모습을 본 찰스는 이후 감옥 사역을 계속했습니다. 위의 찬송시는 찰스가 죄수들을 위해, 그리고 그들과 함께 부르던 찬송입니다.
자신이 전도한 죄수들과 하룻밤을 지낼 수 있도록 허락을 받은 찰스는 날이 밝자 처형장에 끌려가는 죄수들과 함께 마차를 타고 찬송을 불러 이들의 영혼을 위로했습니다. 죄수들이 처형 받는 순간까지 찰스는 이 찬송시를 불렀고, 이 찬송시를 들은 죄수들은 처형대에서 밧줄에 목이 묶일 때 살려 달라 애원하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을 믿으며 평안하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위의 찬송시가 특히 죄수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유는 찬송시에 쓰인 단어들이 그들의 비참하고 절망적인 처지를 생각나게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첫 연에서 사탄이 노예의 사슬로 우리의 죄 있는 영혼을 꽁꽁 묶었다는 이미지는 바로 죄수들이 처한 ‘상황’(our state, 1연 1행)을 생각나게 합니다. 18세기 중엽의 죄수의 삶을 담은 영화 『레미제라블』(Les Misrables)의 첫 장면을 생각해보면 연상할 수 있습니다.(『레미제라블』은 빅토르 위고가 1862년에 쓴 소설로 찰스의 시대보다 백년 이후의 일이지만 죄수들의 삶은 이보다 더 비참했으면 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폭풍우 아래 다리에는 커다란 쇠사슬을 차고 채찍질을 맞으며 노역하는 죄수들의 모습, 이것이 바로 인간 이하의 삶을 살고 있는 ‘절망한 죄인들’(despairing sinners)들의 모습입니다.
죽음을 앞두고 절망한 죄인들에게 ‘와서 주님을 믿어라’는 전지전능한(Almighty) 주님의 목소리는 갈증 난 목을 적시는 샘물과 같았을 것입니다. 찰스는 특히 이 시에서 주님의 여러 이름 중 모든 것을 해줄 수 있는 ‘전지전능한’이란 단어를 썼습니다. 이는 죄인들의 마음에 자신들의 죄를 구원해줄 정도로 주님을 전지전능한 분이라는 확신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들에게 자신들의 죄를 대속하신 주님은 바로 희망일 것입니다. 주님의 피로된 샘에서 죄가 씼겼다는 건 축복의 소식일 것입니다. 비록 육체적인 죽음을 겪지만 자신들의 죄는 물리적인 것이며 인간의 영혼에 깊이깊이 채색된 죄는 주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면해졌다는 사실이야말로 기쁜 소식일 것입니다.
감옥에서 인간이하의 대접을 받았던 죄수들은 자신들을 벌레(worm)보다 못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신들을 ‘약하고 힘없는 벌레 같은 죄인’이라 여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벌레 같은 죄인이 주님의 손 안으로 떨어졌습니다. 이 약하고 힘없는 벌레가 땅으로 떨어졌다면 산산조각이 나서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손 안에 떨어졌기 때문에 벌레는 살아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따뜻하게 사랑으로 보살펴주는 손 안에서 벌레는 힘을 받아 소생할 수 있을 것이며, 이와 같은 영적 소생의 희망이 있을 때 죽어가는 죄인의 마음은 얼마나 평안했을지 상상이 갑니다.
마지막 연의 ‘떨어지다’(fall)는 시적 기교입니다. 벌레가 떨어지는 것처럼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의미도 있지만 인간의 타락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리 자신은 타락했지만 이는 주님의 손 안에서 한 것이기에, 즉 인간이 타락하더라도 주님은 항상 우리 곁에 계시며 사랑으로 돌보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대속하시는 분이시기에 우리는 희망을 갖고 믿음을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주님을 부활을 맞은 4월, 우리 모두 주님의 손 안에 살포시 담겨있는 우리의 모습을 그려보며 주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을 명상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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