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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신학대학교(METHODIST THEOLOGICAL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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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U 뉴스

동문칼럼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0-01-01 00:00:00
조회수
420
첨부파일
				


 

내가 만약 선지동산에 다시 들어가서 목회를 준비한다면 무엇을 배우고 익힐까~!


선지동산을 떠나 목회현장에서 고민하며 만약 내가 다시 신학교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할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목회초반 제가 배운 신학과 삶의 현장 간극은 저를 많이 당황스럽게 하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 간극을 매우기 위해 노력을 했겠지만 일반적 반응은 신학을 내려놓고 ‘현장의 실제적인 부분을 배운다’는 명분하에 성도들에게 가장 잘 먹히는 프로그램과 영성훈련에 몰입하는 양상으로 나타났는데 교단의 일부 중진들은 신학과 현장의 거리를 좁힌다며 감신의 학문에 칼질하여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하는 시도가 지금 학교 문제를 야기 시킨 한 부분으로 나타난 것 같습니다.

선배의 입장에서 지금 신학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후배들에게 솔직히 많이 미안합니다. 저희들이 선지동산을 떠나 목회현장에 들어섰을 때와 지금 막 목회에 입문하는 상황과 형편 즉 현장이 달라져도 너무 많이 달라졌습니다. 1,300만의 교인이 600만으로 추락하였고 600만의 성도들의 대부분이 60세 후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교회의 부정적 이미지와 전통의 갇힌 구태로 인해 교회를 떠났거나 떠날 잠재력을 가진 예비 가나안이 된 상황입니다. 교회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 상실과 목회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로 인하여 이제 막 목회지로 들어 올 후배들이 맞이할 현장은 시베리아와 황량한 사막 한 복판의 모습이 딱 맞을 듯합니다. 열심을 내어도 좀처럼 열매를 내어 주지 않을 상황 속에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 오히려 목회의 방향을 분명하게 할 때라 생각합니다.

제가 초년 목회하던 당시는 무조건 「묻지 마 신앙」이었습니다. 복종을 넘어 맹종하는 것이 바른 신앙의 모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토론과 자유로운 발표 그리고 개인의 생각과 삶이 반영됨이 기본 문화인 세대가 여러분의 목회 대상입니다. 선배들이 앞서 하던 목회에 신학과 목회 현장의 괴리는 맹종하는 교인에게 굳이 설명과 설득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신학생 본인의 분명한 이해와 확신 그리고 성도들에게 억지강요가 아닌 설명을 통한 이해 즉 설득이 필요한 시대로 바뀐 것입니다. 저의 목회 초년의 설교는 「선포」였습니다. 교인의 대부분이 60세 이후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설교 방향은 「설득」입니다. 지금 제가 섬기는 교회의 주류가 30~40대를 이루다 보니 의문이 가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을 설명하고 이해시키고 선택하여 그 길을 가게 하는 것이 저의 역할이기에 「선포에서 설득으로」 방향이 바뀐 것입니다. 선포적 설교는 받아들이든 말든 목회자는 전하면 그만입니다. 말씀대로 살고 못 살고는 전적으로 성도 개개인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설득은 맡겨진 한 영혼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수용하여 삶이 변화하여 열매 맺도록 도와야 하기에 성경적 바탕 위에 많은 신학적 소양이 필요했습니다. 신학을 배우던 당시 스쳐 지나가듯 학점을 따기 위해 배웠던 학문을 다시 하나하나 붙잡고 씨름해야만 했습니다. ‘그때 왜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던가!’ 고민도 해보았지만 당시에는 신학의 필요성이 절박하지 않던 풍조여서 더욱 그리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후배들이 성경 66권을 최소한 30독 이상을 하고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많은 분들이 성경의 전체적인 그림을 보는 통전적 시각이 없이 나와 목회를 하다 보니 이곳저곳 좋다는 성경 세미나에 참석하고 또 교회로 돌아와 전달강습을 하는데 단순히 머리로만 배우는 프로그램의 한계성을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목회자들의 고민은 어떤 프로그램을 가지고 가도 성도들의 자세와 태도는 ‘목사님은 처음이시지만 우리는 이미 오래 전에 다 해본 것입니다’하며 거부반응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런 반응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어설픈 성경공부와 프로그램은 오히려 독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여 어설픈 신학개론이 아닌 삶을 움직이고 부름 받은 성도의 중심을 세상적 가치관에서 성경적인 삶으로 바꾸는 힘 즉 본인을 움직이고 있는 영적 여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학생과 목회자의 옷을 벗고 부름 받은 성도 한 사람으로 말씀 앞에 서는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저의 경우는 신학생이 되는 순간 목회자의 옷을 입고 성경을 대하고 신학을 마주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였습니다. 똑같은 말씀을 읽어도 성도와의 괴리가 있었습니다. 보다 감동 있는 말씀을 전하기 위해 읽은 성경이 오히려 저에게 독이 되었습니다. 이는 성경을 넘어 기도와 기타 신앙생활에도 똑 같은 부정적 영향을 주었습니다. 신학생의 자격으로 목회자의 모습으로 기도의 자리에 앉은 것이 잘못 꿰어진 단추였습니다. 연약한 성도들의 모습을 보며 ‘어떤 부분을 더하고 변화시키도록 도울까!’의 고민이 반영된 기도는 저를 하나님의 부름 받은 한 사람으로 주님 앞에 서지 못하게 하는 방해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오랜 시간을 목회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방황케 하였습니다. 지금 저는 기도와 말씀 앞에 설 때에 목회자의 옷을 벗고 부름 받은 한 사람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먼저 하나님의 자녀로 사랑을 받고 은총을 누리며 기뻐하고 감격하는 신앙인이 된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감사하는 내적여행의 과정을 맛보고 이 순간들을 성도들과 함께 나누다 보니 성도들도 자연스럽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고 또 놀라운 성장과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고 변화하지 않는 것은 기적이고, 변화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는 것이 현재 우리 연합공동체가 믿고 따르는 신앙의 모습입니다.

저는 선배님들에게 배웠던 것을 내려놓아야만 했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성도들을 우리교회 소속된 멤버 삼고자 행했던 프로그램과 부흥의 방식들입니다. 왜냐하면 목회는 우리 교인 삼는 것이 아닌, 하늘 백성으로 세워 가는 것이기에 그러합니다. 저는 목회 초년에 주변의 배회하는 성도들을 우리 교인 삼아 성도수를 늘리는 것이 성공한 목회로 배웠습니다. 「숫자놀음」 이라는 진흙탕에 빠졌던 것입니다. 수많은 고통의 대가를 지불한 후 목회를 처음부터 다시 점검하고 시작해야만 했습니다. 신학생 때에 반드시 했어야 검증을 뒤늦게 한 것입니다. 교회와 목회에 도움이 된다면 아무런 검증 없이 무조건 수용하고 도입한 것들이 부메랑이 되어 모두를 고통스럽게 하는 현장에서 영적 성장과 성숙에 대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목회란 영혼 구원하여 제자삼고 나아가 부름 받은 성도 한사람 한 사람을 이 땅의 증인으로 세워 잃어버린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임을 뒤늦게 깨달음 다음에 기존 방법을 내려놓고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만으로 돌아가는 유턴을 단행하게 된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카페목회와 소그룹으로 진행되는 모습을 보고 저의 ‘목회관과 목회 철학이 무엇이냐?’ 묻습니다. 그러면 저는 ‘없다’ 대답합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목회란 저의 꿈과 야망을 이루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소원이 저를 통해 이루어지도록 저를 도구로 내어드리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여 저는 하나님의 소원과 뜻 그리고 주님의 계획하심을 알기 위해 기도와 말씀을 통해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을 늘여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공동체의 모든 사역의 ‘하고 안하고’의 결정은 성경이 기준입니다. 기준이 있을 때 평가가 바르게 나타납니다. 기준이 없으면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잡학동산이 될 위험이 있습니다.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제가 신학생 때는 잡학사전의 만능 맥가이버가 되고자 노력했었던 것 같습니다. 다방면에 유능한 만물박사가 목회 준비를 잘하는 것으로 착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신학생으로 돌아간다면 분명한 ‘성경의 기준으로 하여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별하여 꼭 필요한 것을 준비하는 주님이 맡기신 사역에 집중하는 제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에 통달함입니다. 신학이 성경에서 나왔고, 목회도 성경에서 나왔으며, 성도의 삶 또한 성경을 근본하여 이루어지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많은 목사님들의 절망은 ‘어떤 방법을 써도 성도들이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합니다. 수많은 프로그램과 서비스는 재미와 배우는 즐거움을 제공해 줄 수 있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줄 수는 없음을 느끼는 것입니다. 저도 부족한 제가 주인 되어 미래를 꿈꾸며 삶을 그려가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뒤늦은 실패 가운데 저에겐 멘토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잘 나가는 수많은 목회자를 다 배우고 자신의 목회에 반영하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괴물이 나옵니다. 하여 신학생 때 꼭 필요한 스승 멘토를 찾아 조언을 구하며 후원속에 주님의 사람으로 세워지는 과정을 걸어야 합니다. 이때 우리의 길라잡이가 되어 줄 멘토는 자신이 내적여행을 하는 사람이고 이 내적 여행을 통해 영적 성장과 성숙을 이루어 낸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런 분을 만나 성숙한 신앙의 삶을 보고 배우게 되면 우리는 후에 목회의 현장에서 자신이 걸어 온 영적 여정을 성도들에게 전수하여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동역자가 될 것입니다.

‘혼자 하려하지 말고 영적 스승을 구하여 그분과 함께 영적 여정을 배워가며 자신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가는 훈련을 통해 먼저 성숙한 그리스도인 온전한 하늘 백성의 삶을 맛보는 자가 되라’ 참 목회란 이러한 영적 여정을 성도들에게 전수하여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은 것과 같은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행복하고 보람된 목회를 하고 있으며 부름 받은 성도 한사람으로 살아가는 선배가 해줄 말은 참 많지만 모든 것을 다 다룰 수 없기에 중요한 몇 가지만 함께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신학생으로 보내는 학창생활 다시 선지동산에 들어간다면 저는 부름 받은 성도 한사람에서 주님의 제자로 세워지는 과정을 배우고 누리며 보내고 싶습니다. 지금은 눈에 보이는 결과물보다 그 열매를 내어 놓은 과정이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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