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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신학대학교(METHODIST THEOLOGICAL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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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세계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0-01-01 00:00:00
조회수
469
첨부파일
				


 

감리교신학대학교

신학 전공
2016년 9월 3일
차주은


다시 만난 세계

여성교육은 평화로 가는 길이다.
지난 방학, 나에게는 아주 특별한 경험이 있었다. 감신과 스크랜턴센터가 함께 참여했던 ‘2016 Scranton Scholar’s Leadership Program’과 ‘2016 Japan Korea Peace Seminar: Be a Peace Maker!’가 바로 그것이다. 이 두 프로그램은 여성들의 주체성 고양과 아시아 나라들의 화합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프로그램들을 통해 ‘평화를 지향하는 페미니즘’을 배웠다. 만약 불평등을 해소하고 함께-사는-것(being-together)이 페미니즘의 과제라면, ‘평화’라는 가치는 여성교육의 완성이라고 해도 지나친 것이 아닐 것이다.
다양한 인종과 종교인으로 구성된 참가자들은 제 각기 삶의 방식을 갖고 있었다. 그 다채로움 속에서 어우러진다는 건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여태까지 내가 살아온 방식을 그들에게 이해시키고, 또 그들은 그 자신만의 방식을 내게 이해받아야만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며 절충할 수 있는 제3의 길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재미있던 예(example)를 하나 소개하고 싶다. 나는 소위 채식주의자(vegetarian)를 가까이에 둔 적이 없었다. 그래서 채식인과 함께 식사를 하고, 공동생활을 하는 방식에 무지했었다. 그런데 마침 참가자 중에 채식인이 있었다. 그 친구와 바깥에서 음식을 사먹으려니, 한국은 고기를 너무나 사랑하는 나라였다는 걸 깨달았다(그만큼 고기나 육수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찾기가 어려웠다). 결국엔 과일과 쌀을 챙겨준 것으로 해결은 되었지만, 채식인이라는 ‘또 다른 종류의 삶’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우리와 비슷하지 않은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을 성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는 쉽게 배타적 태도를 취한다. 이것도 주관적인 내 경험일 뿐이지만, 특히 신념끼리 부딪치게 되는 사람을 만날 때 그러하다. 그럴 때 ‘안 맞나보다’하고 돌아서는 일이 가장 쉽다. 두 번째는 내 신념의 옳음을 강요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는 것이다. 맞부딪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첫째도 둘째도,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 한 공간에서 일주일 동안 버텨야했던 우리에겐 맞지 않는 방식이었다. 배타를 넘어 관용으로 나아가야 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이 공간이 아시아(Asia)를 보여준다고 느꼈다. 한국과 인접한 국가들—일본, 중국, 러시아, 나아가 동남아시아—과 공존하는 우리의 방식은, 지난 20세기부터 형성된 냉전이데올로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다름을 틀림으로 이해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폄하하고 배척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뭣이 중헌가?’를 따지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사는 게 중허다!’는 것이다. 여태까지의 전쟁에 희생된 수많은 생명들을 안타까워하는 이 시점에, 나아가 인간을 인간의 도구로 사용해온 지난 역사를 돌아보는 이 시점에, 우린 같이 잘-사는-법(well-being)을 강구해야 하는 의무가 주어져있다.
그렇다면 여성교육이 그러한 의무에 기여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인간의 존엄성 회복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 인간들은, 오늘날 여성, 장애인, 노동자, 소수자(minority) 등 ‘사회가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 중 단 한 사람도 존엄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피조물을 무시하는 행위요, 나아가 하나님이 그 피조물을 향해 의도하신 바를 무시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모든 인간에게 존엄함을 서로 존중하는 것만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의 실천일 것이다. 나는 그 뜻에 비추어 여성인 나 자신, 또 다른 여성인 너, 그리고 여성인 우리는 존엄한 존재라는 것을 믿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앞선 이야기에 입각해, 지난 19세기 이후의 한국 전쟁사를 공부하며 깨달은 것은 다시는 살인과 지배, 폭력과 억압이라는 오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각성이었다. 그 복음적 가치와 계몽의 빛을 제공한 것이 감신-스크랜턴의 여성교육프로그램이었다.
우리가 그러한 존엄과 윤리적 각성을 간직할 때, 이 땅에는 상생(coexistence)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시작될 것이다. 상생한다는 것, 그것은 그 어떠한 생명도 내 뜻대로 해하거나 조종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겠다는 태도이며, 너를 위해 때론 내 것을 양보하겠다는 태도이며, 적극적인 의미에서는 너의 생명에 책임감을 다 하겠다는 태도이다. 네가 없는 상생은 상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한 성찰 끝에는 실천이라는 결실이 맺어질 터, 사회선교적으로 이룰 수 있는 것들도 많을 것이다. 예컨대 정치적인 영역과 경제적인 영역에서 말이다. 정치적·경제적으로 배제된 자들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사회에 참여한다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상생적 태도’의 결과이자 물질화(materialized)라고 생각한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이 가시적으로 현현된 것이 그리스도의 대속사건인 것처럼 말이다.

결론을 지으려 한다. 여성교육은 여성과 약자에 대한 존엄성을 회복시켜주며, 인류의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미래를 계획할 지혜를 얻도록 도와줄 수 있다. 이러한 교육된 여성들이 모여 보다 더 평화적 세계를 구현하여 진보된 세계를 열어갈 것이다. 이 세계는 곧 ‘상생의 세계’이다. 이처럼 상생의 세계라는 새로운 시각(paradigm)을 선물해준 프로그램과 참여자들, 감신과 스크랜턴센터에 감사드린다. 이 감사를 표현할 길이 무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학우들에게 소개해 주는 일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물론 이는 부탁받아 쓰는 기고문이지만, 내 주변 사람들에게라도 흔쾌히, 값없이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상호의존성이 증대되는 관계화 시대, 세계화 시대에 여성으로서의 글로벌 리더십을 기르고 싶은 학우들께 적극적으로 참여해 보라고 권해드리는 바이다. 평화와 생명존중이라는 기독교의 핵심정신과 더불어 배울 수 있는 페미니즘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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