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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신학대학교(METHODIST THEOLOGICAL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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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학년도 졸업예배설교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4-03-04 08:44:02
조회수
13177
첨부파일

2013학년도 졸업예배설교.hwp

 

2013학년도 졸업예배설교

본문: 아모스서 3:1-8

제목: 하나님 말씀의 대언자

마가복음1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여기 앉아있는 학생들은 지난 4년 혹은 6년이나 7년 동안 학부와 대학원에서 귀한 학업을 마치고 학사 또는 석사학위를 수여받게 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졸업식에 참석하신 분들께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는 의미에서 졸업생들을 위한 축하의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여러분을 위해 가르치시느라 애쓰신 교수님들, 섬기신 직원들, 그리고 누구보다도 여러분을 물심양면으로 후원해주신 교회와 부모님들께 감사의 박수를 보내드립시다. 감사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 말씀에 의지하여 졸업하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 말씀의 대언자의 사명에 대해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신학교의 가장 중요한 존재 목적은 목회자를 양성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목회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위대한 신학자 칼 바르트가 힘주어 말했듯이 ‘ministerium verbi divini’ 곧 하나님 말씀의 봉사입니다.

최근 한국교회의 신뢰도가 계속 추락하는 이유를 비기독교인들에게 물었는데, 그 첫째 이유가 언행일치가 안 돼서이고 그 둘째가 교회 비리와 부정부패 그 셋째가 타종교에 대한 비판적 입장이었습니다. 저는 언행일치가 안 된다는 지적에 크게 공감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 말씀의 봉사를 위해 부름받은 목회자들이 자신들의 사명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하나님 말씀을 대언해야 할 목사들이 하나님 말씀이 아닌 다른 것을 좇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2017년이 되면 종교개혁 500주년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와 특히 한국감리교회를 바라다보면 과연 하나님께서 어떻게 느끼실까 심히 송구스럽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부르짖으시는 음성을 경청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본문 아모스 3:1-2절을 보니까 하나님께서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자손들을 부르십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에 대하여 이르시는 이 말씀을 들으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리신 모든 족속에 대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너희만을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3:1-2)

여러분, 이 말씀이 선포되는 장소는 이스라엘 백성이 노예로 살았던 애굽 땅이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애굽 땅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도하여 올리신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하실 때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너희만을 알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제와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고 하셨을까요?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의 역사에서 출애굽 사건은 가장 획기적인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그것은 노예살이와 죽음의 위협에서부터 자유와 생명의 풍성함으로의 탈출이었습니다. 출애굽은 단순히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부요를 누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불의한 권세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는 것 이었습니다.

출애굽 사건을 오늘 우리의 상황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아마도 신앙의 자유가 없는 북한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에 견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지난 주말에 북한의 지하 교회 그리스도인들의 고난에 대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신이 보낸 사람을 보았습니다. 북한의 사회주의 헌법 64조에는 분명히 신앙의 자유에 대한 조항이 있으나, 북한의 현실은 기독교 신자들을 가혹하게 핍박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중국과 두만강으로 국경을 이루는 함경북도 회령의 한 마을의 지하 교회 신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철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아내 영애 때문에 1급 정치범이 되어 수용소에 갇힙니다. 끝까지 신앙의 지조를 지키다가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잔혹한 고문을 당하여 고통하는 아내를 차마 더 이상 지켜보지 못해 철호는 자신의 손으로 아내의 목숨을 거둡니다. 그리고 그는 마약에 의지하여 고문으로 생긴 두통을 견뎌가며 중국으로 건너갑니다. 이년 후 죽어가던 아내(‘안까이함경도 사투리)의 소원을 이뤄주고자 철호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서 동네 신자들을 모두 함께 탈북시키고자 합니다.

이 영화의 제목 신이 보낸 사람이 과연 주인공 철호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결코 모세와 같이 출애굽의 기적을 일으키기는커녕, 지하교회 신자들이 거의 몰살당하는 비극을 지켜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철호 자신도 끝내는 체포되어 총살당하게 됩니다. 그가 총살당하기 직전에 기둥에 묶인 채 환상을 보게 됩니다.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 영애가 나타나 그에게 속삭입니다: “여보, 더 이상 애쓰지 말아요. 이젠 되었어요.” 그리고 그녀는 그의 곁에서 평소 즐겨 부르던 찬양을 들려 줍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주님은 철호에게 물으셨네

사랑하는 철호야 넌 날 사랑하느냐

오 주님 당신만이 아십니다.”

어느새 철호의 눈가에 눈물이 맺힘과 동시에 그의 입술도 나지막한 음성으로 오 주님 당신만이 아십니다라고 읊조리며 미소를 짓습니다. 그를 처형하던 북한군 분대장과 소대장이 철호의 미소의 의미를 알지 못한 채로 흠칫 놀랍니다. 이렇게 영화는 끝이 납니다. 함경북도 회령의 지하교회 교우들은 결코 한 발짝도 무시무시한 이 시대의 애굽 땅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도 어느 한 신도가 물었던 물음, 아니 그들 모두의 물음이며, 이 시대 우리 모두의 물음이어야 할 물음을 제시합니다:

남조선이 가나안 땅입니까?”

여러분, 여기서 가나안 땅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까? 다시 말해서 경제적으로 풍요하고 정치적으로 자유한 곳을 말합니까? 사회주의 북한이 애굽 땅이니까 자본주의 남한은 가나안입니까? 아니면 왜 영화의 등장하는 이들만이 아니라 그 질문을 듣는 우리들 마저도 오늘의 대한민국을 가나안 땅 곧 약속의 땅으로 확신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왜 아모스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그 당시 가나안 땅에 살고 있었던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는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안되었을까요? 사실 아모스 시대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대한 메시지, 곧 풍요와 번영의 복음을 전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아모스 선지자는 그 당대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굳이 전한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오늘 본문에서도 그렇고 아모스의 다른 곳에서도 나타나듯이 선지자도 아니요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며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던 드고아의 평범한 사람이던 아모스가 하나님 말씀의 대언자가 된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아모스 1:2절은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을 목자의 초장이 마르고 갈멜산 꼭대기가 마르리로다로 표현합니다. 또 아모스 8:11절에는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하나님이 내리시는 재앙을 말합니다.

여러분, 한 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모스는 목자였고 농부였습니다. 그래서 생명의 순환이 끊임없이 지속되는 먹이사슬에 의해 유지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기갈이 와서 초장이 마르고 산 꼭대기가 마르면 먹이사슬의 가장 밑바닥이 붕괴됩니다. 그리하여 곤충과 새, 그리고 동물과 동물의 왕인 사자에 이르기까지 죽음이 엄습하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흥미로운 것은 아모스 선지자가 하나님을 생명의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에 있는 라이언 킹 곧 사자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38절입니다: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

아모스는 본문 37절에서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로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사자처럼 부르짖으심으로 자신이 두려움과 떨림 속에서 예언자의 소명을 받았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아모스서에는 사자의 부르짖음으로 묘사되는 하나님의 꾸짖으심이 두 번 나옵니다. 본문 34절에서는 굶주렸던 사자가 먹잇감을 잡고서 부르짖는 모습을 그려줍니다:

사자가 움킨 것이 없는데 어찌 수풀에서 부르짖겠으며 젊은 사자가 잡은 것이 없는데 어찌 굴에서 소리를 내겠느냐?”

그런데 아모스 12절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부르짖음은 그 양상이 다릅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소리를 내시리니 목자의 초장이 마르고 갈멜산 꼭대기가 마르리로다.”

이것은 하나님의 부르짖음 곧 꾸짖으심으로 온 세상이 마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자로 빗대어진 하나님으로 보자면 역발상이 가능합니다. 온 세상에 기갈이 와서 먹이사슬이 무너지게 되고 사자마저도 굶주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자가 울부짖습니다. 그 사자는 오랜만에 먹잇감 사냥에 성공합니다. 다시한번 그는 울부짖습니다. 이렇게 두 번의 울부짖음은 그 의미가 다릅니다.

그렇다면 왜 아모스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을 구태여 사자에 비유하여 말하고자 한 것입니까? 그것은 목자이며 뽕나무 재배자 출신 예언자 아모스만이 사자와 생명의 먹이사슬의 관계 속에서 볼 수 있었던 하나님의 비밀’(아모스3:7)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바로 다음 부분, 곧 아모스 3:9절에서 4:3절까지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아모스에게 계시하셨던 그 시대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아모스는 사마리아의 궁궐과 벧엘의 제단에서 벌어지는 불법과 포학을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일그러진 동물의 왕국의 무질서를 연상하게 해 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목자가 사자 입에서 양의 두 다리나 귀 조각을 건져냄과 같이 사마리아에서 침상 모서리에나 걸상의 방석에 앉은 이스라엘 자손도 건져냄을 입으리로다. ... 사마리아 산에 있는 바산의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힘 없는 자를 학대하며 가난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아모스 3:12; 4:1)

여러분, 여기서 사자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 사자는 사마리아의 왕 여로보암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또 바산의 암소들도 사마리아 왕국의 고관대작들의 여인들이 사치와 풍요를 위해 민생들을 짓밟는 것을 풍자한 것입니다. 또한 이 말씀에 등장하는 목자는 하나님을 가리키며 악한 사자의 입에서 목자 되신 하나님의 백성 곧 양들을 구원하심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모스 선지자는 사자의 은유를 두 가지 방식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한 편으로 그 사자는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하시는(5:24) 여호와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또한 사자는 자기 궁궐에서 포학과 겁탈을 쌓는”(3:10) 여로보암 왕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선한 사자 왕이라면 여로보암은 악한 사자 왕입니다. 마치 라이언 킹이라는 영화에서 선한 사자 왕인 무파사와 악한 사자 왕인 스카처럼 말입니다.

여러분, 지금 북한 땅에서는 악한 사자 왕의 지배 하에서 14만 여명의 지하 교회 성도들만이 아니라 수많은 동포들이 신음하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북한 동포들의 인권과 북한 지하 교회 성도들의 신앙의 자유의 문제를 모른 체해서는 아니 됩니다. 감신대에 새 학기에 두 명의 탈북 신학생이 입학하게 되면 모두 10명의 신학생들이 공부하게 됩니다. 2014년 봄학기부터 탈북 신학도들과 함께 북한 복음화와 북한 교회 재건과 회복을 위한 특별한 모임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그렇지만 오늘 감신대를 졸업하는 여러분들에게 여전히 들려오는 화두와 같은 물음은 남조선은 가나안 땅입니까?”인 것입니다.

과연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선한 사자 왕이신 하나님의 정의가 물 같이, 하나님의 공의가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고 있습니까? 아니면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 곧 사자의 부르짖음을 듣지 못해 기갈인 것입니까?

이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짖음을 들으십시요! 이 시대의 사마리의 궁궐과 벧엘의 제단은 어디입니까? 불의한 힘 있는 자들과 타락한 교권주의자들의 허세에 기죽지 마십시오. 도리어 사자와 같이 포효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요!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의 공갈과 협박에 굴하지 않고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했던 아모스를 기억합시다. 예루살렘의 제사장들의 위협과 경고에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4:19)며 담대히 복음을 전했던 베드로와 요한을 본받읍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로마 제국의 총독 본디오 빌라도의 법정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당당히 진리의 증언자로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요!

말씀의 대언자들이여!

광야에 소리치고 굽은 길 곧게 하니 그 이름은 예언자 그 이름은 예언자

어둠을 물리치고 진리로 해방하니 그 이름은 전도자 그 이름은 전도자

여러분 앞서 하나님 말씀의 대언자들이었던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본받아,

그리고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가십시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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