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설문
로마서 1장 17절, 고린도전서 9장 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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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등록일
- 2011-03-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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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부파일
Date : 2009-11-26
Source : 국민일보
Title : 종교개혁 신앙의 부활
Article : 로마서 1장 17절, 고린도전서 9장 19절
한국교회가 다시 개혁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오늘의 교회 개혁은 역사에서 재발견해야 합니다.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 존 웨슬리가 주장한 종교개혁 신앙이 다시 부활해야 합니다.
루터는 ‘오직 은총으로만’ ‘오직 믿음으로만’ ‘오직 말씀으로만’을 강조했습니다. 은총과 믿음, 그리고 말씀의 핵심은 그리스도입니다. 루터는 ‘갈라디아서 강해’에서 마치 반지가 보석을 붙들 듯 신앙은 그리스도를 붙들고, 그리스도를 현존케 하며,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내 주하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자를 하나님이 의롭다고 여기시며,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곳에서만이 하나님이 우리를 용납하시고 의롭다고 여기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드는 십자가 신학이 나의 신학리라고 했습니다.
루터는 더 나아가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실제로 그리그소를 본받아 의인이 되려면 로마서1장 17절 말씀처럼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본받고 그 고난에 동참해야 한다고 루터는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은 자유와 사랑의 변증법적 조화를 통해 실천해야 함을 말합니다. 루터는 그 유면한 ‘기독자의 자유’에서 고린도전서 9장 19절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된 것은 많은 사람은 얻고자 함이라.’를 중요시 여깁니다.
크리스천이 누리는 자유는 모든 것의 주인이 되는 자유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얻은 자유를 방종과 향락의 기회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성령의 농예가 되어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는 종노릇을 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올라가고 사랑으로 이웃에게로 내려오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칼뱅은 이러한 사랑의 실천과 경건의 행위를 루터보다 더욱 강조했습니다. 칼뱅이 쓴 ‘기독교 강요’의 중심은 예절이 아니라 성화라고까지 역사 신학자들이 말합니다. 기독교 강요에는 경건에 이르는 성화가 아주 많이 강조돼 있습니다. 그러나 칼뱅의 성화론은 본성까지 변화되는 성화론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반면 웨슬리는 본성이 변화되는 성화를 말합니다. 경건의 수련은 통해 예수처럼 행동할 것을 웨슬리는 강조합니다. 웨슬리는 성령의 충만한 역사에 인간이 복종하는 결단을 하여 그리스도를 본받는 성화가 일어난다고 인식했습니다. 요한복음 5장 17절 말씀대로 하나님이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순종할 때 예수의 성품과 예수의 생활로 변화를 받아 작은 예수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지난 10년간 인구통계에 따르면 한국 기독교는 0.6%, 곧 14만 4000명(요한계시록과 똑같은 숫자)이나 교인 수가 감소했다고 합니다. 그 원인은 한국 교회가 예수 믿는 것은 많이 강조했지만 예수를 본받는 것, 곧 작은 예수 운동을 강조하지 못한 것에 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한국 기독교인들은 로마서의 칭의 신앙을 기초로 이제는 산상수훈의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세상의 빛이 되는 작은 예수로 성숙돼 가야 합니다. 그래서 사회적 성화의 빛을 발해야 합니다. 오늘 한국교회가 종교개혁 신앙으로 다시 부활하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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