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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신학대학교(METHODIST THEOLOGICAL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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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문

2013입학식 및 개강예배설교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3-03-07 00:00:00
조회수
11913
첨부파일
 

제목: 천국의 제자들이여!

본문: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13:51-52)

오늘 우리는 2013 학년도에 감리교신학대학교의 학부와 대학원에 입학하는 495(학부230, 대학원265)명의 학생들과 평생교육원 144명의 신입생들을 맞이하여 이들의 입학을 축하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또한 학부와 대학원 그리고 평생교육원에 재학하는 학생들은 한 학년 씩 진급하여 다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이 자리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신입생들 중에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온 6명의 국제 대학원 학생들과 탈북하여 학부에 편입한 3명의 학생들도 있습니다. I would like to welcome and congratulate you, 6 students from Asia and Africa, for your entering our MTU community! 탈북하느라고 고생 많이했고 기도와 눈물로 우리 학교를 선택한 3 명의 신학도 여러분, 이제 여러분은 우리 감신의 한 식구입니다. 사랑합니다! ^^

오늘 본문의 말씀은 4 복음서 가운데 오직 마태복음에만 나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의 말씀으로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나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왜 예수님은 제자들을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이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 다음 말씀을 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을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이라는 말과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이라는 말은 서로를 설명해 줍니다.

먼저 뒤의 것을 가지고 앞의 것을 설명해 봅시다.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인들 가운데 서기관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구약성경의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학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을 그냥 서기관이 아니라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이라고 하심으로써 엣것과 새것을 구별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앞의 것을 가지고 뒤의 것을 설명해 봅시다. 자기가 먹여 살려야 할 여러 식구들을 거느린 가장, 집주인은 새것 곧 갓 추수한 곡식만이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옛것 묵은 곡식을 곳간에서 내와야 합니다. 천국의 제자들이라 할 지라도 예수님의 말씀만이 아니라 구약성경의 말씀을 잘 알고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비유의 말씀으로 예수님은 당신의 하나님 나라 비유의 가르침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를 가르치십니다. 그것은 구약의 말씀과 예수님의 말씀 곧 신약의 말씀은 불연속이기도 하며 동시에 연속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듀크 신학대학원의 구약학자인 엘렌 데이비스 교수와 신약학자인 리차드 헤이즈 학장이 주도한 성경 프로젝트에 의하면 성경의 성실한 해석은 전체 이야기에 관여할 것을 요청합니다. 다시 말해서 신약성경은 구약성경과 별도로, 그리고 구약성경은 신약성경과 별도로 바르게 이해될 수 없습니다. 신약성경의 빛에서 구약성경의 정중한 읽기는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행위하고 말씀하시는 한분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모상들을 보여줍니다. 이 모상들의 온전한 차원들은 오직 십자가와 부활의 빛에서만 파악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저는 본문의 말씀에 근거하여 천국의 제자된 신학자들 혹은 신학도들인 우리가 당면한 새로운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공급하는 것이야말로 감리교신학대학교의 위대한 학문적 사명임을 밝히고자 합니다.

첫째, 우리는 천국의 제자된 신학자 혹은 신학도입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신학자들과 신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는 사람들은 천국의 제자된 신학자와 신학생입니다. 천국의 제자된 신학자와 신학생은 교단이나 교파 혹은 어떤 학파나 학교에 소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물론 현실 안에서는 교파가 다르고 학교가 다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천국의 제자됨이 중요합니다.

존 웨슬리 목사님은 로마 가톨릭 신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개신교인과 가톨릭 교인들이 교파가 다르다고 서로 헐뜯고 미워하며 상처를 주지 말라고 권면하면서 서로가 동의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그 안에서 우리가 서로를 하나님 나라로 이끌도록 협력합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오늘날 에큐메니칼 운동이 시작되기 수백년 전에 이미 교회연합의 정신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교회를 보면 개신교인과 가톨릭 교인 간에만이 아니라 같은 개신교인들 사이에서도 서로 갈등하며 분열하기가 일 수여서 하나님 앞에서 죄송하고 세상 사람들 앞에서도 부끄럽습니다. 이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바르게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회나 교파, 학교나 학파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천국의 제자된 자들입니다.

여러분, 올 해 1030일부터 118일까지 부산에서 세계교회협의회 제10차 총회가 열립니다. 전 세계에서 110여개국에서부터 5000여명의 참가자들이 옵니다. 개신교회는 물론이고 정교회와 가톨릭교회를 망라해서 수많은 교파와 교회의 대표자들이 참석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공부하는 동안에 이러한 세계적인 대회가 열린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가능하면 참석을 해서 이 시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천국의 제자된 그리스도인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탐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한국 감리교회는 벌써 5년 째 교단의 최고 지도자를 선출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도 천국의 제자된 신학자와 신학도인 우리가 심각한 책임을 지고 씨름해야 됩니다. 감리교단의 근본 문제 중의 하나가 신학교 출신간의 분열, 곧 학연 싸움입니다. 감신, 목원, 협성의 졸업자들이 웨슬리 목사님의 정신을 상실하고 서로를 비난하며 분열을 거듭해 왔습니다.

올 해는 감신대의 2대 교장이었으며, 지금부터 110년전인 1903년에 일어났던 원산부흥운동의 주역이었던 로버트 하디 목사님을 기억하면서 감리교회의 회개와 갱신을 위한 기도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5월 넷째 주일에 감신에서 원산부흥운동에 대한 학술대회와 3개 신학교 신학생들의 연합 성회가 있을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 여러분들 모두가 함께 기도하며 동참함으로써 천국의 제자된 신학도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둘째, 우리가 당면한 새로운 시대를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천국의 제자된 신학자와 신학도는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가 당면한 새로운 시대를 바르게 인식해야 합니다. 찰스 웨슬리 목사님이 지으신 찬송가 가운데 우리가 즐겨 부르는 나 맡은 본분은2절은 부르심 받들어 내 형제 섬기며, 구주의 뜻을 따라서 내 정성 다하리입니다. 그런데 2절의 앞부분을 영어 원어로 보면 한글 번역이 놓친 의미심장한 표현이 있습니다.

“To serve the present age, My calling to fulfill;”

이것을 정확히 다시 번역하면 이 시대를 섬김으로 내 부르심을 이루리입니다. 찰스 웨슬리 목사님은 천국의 제자된 그리스도인의 부르심이 이 시대를 섬김으로 성취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감리교 운동이 일어났던 18세기는 어떠한 시대였고, 우리가 당면한 21세기는 어떤 시대입니까? 우리 감리교인들은 18세기 영국을 감리교 부흥의 시대로 알고 있지만,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영국은 물론이고 유럽 전체가 급속히 세속화하기 시작한 시대로 봅니다. 17세기의 영국은 피비린내 나는 종교 갈등으로 수많은 지식인들이 종교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18세기는 이성이 지배하는 시대 그리고 계몽주의의 시대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시대 영국의 유대교 지도자이며 저명한 신학자인 조나단 삭스는 그의 저서 [The Dignity of Difference](차이의 존엄성)에서 서구사회가 계몽주의에 의해 세속화의 길을 걷게된 근본 원인을 당대 종교가 시대적 도전에 바르게 응답하는 데 실패한 데서 찾고 있습니다. 당시의 교회들이 교파 간에 갈등하고 심지어 신구교간에는 전쟁을 할 정도로 타락한 결과가 돌이킬 수 없는 무신론과 세속주의의 승리를 불러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삭스는 우리 시대에 당면한 영적, 신학적 과제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대규모 살상무기가 과격한 집단들에게 주어질 수 있는 시대에 인간답게 하는 신앙의 힘과 공존의 심각한 긴박성을 깊이 믿는 사람으로서 나는 우리가 또 다시 실패할 여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몇 년간에 여러 차례 우리는 유럽의 계몽주의가 생각했듯이 종교가 침묵당하고, 주변으로 밀려나며, 온건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도리어 우리 시대의 종교는 불입니다. 불처럼 그것은 우리를 따뜻하게도 해 주지만, 우리를 데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화염의 수호자들입니다.”

21세기 초반을 살아가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것은 전례없이 심각하게 세계평화가 위협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러한 위협이 종교에 근거해 있고 종교에 의해 정당화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를 바르게 섬기기 위해서는 종교간에 서로를 진멸하지 않고 상호간에 관계를 형성하는 길을 시급하게 찾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천국의 제자된 신학자 혹은 신학도로서 이 시대를 왜 포스트모던, 다문화, 다종교, 그리고 세계화된 시대이며 상호연관된 차이’(interconnected differences)의 세계라고 하는지를 탐구해야 할 것입니다.

드류 신학대학원의 미래교회 학자인 레너드 스윗 교수는 21세기 기독교가 직면한 위기를 완벽한 폭풍’(perfect storm), 곧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쓰나미, 종교다원주의라는 허리케인, 그리고 생태학적 위기에 의해 빚어지는 지구 온난화와 수면 상승이라는 삼중적 폭풍으로 부릅니다. 천국의 제자된 신학도 여러분, 우리 감신대의 신학자들은 과거 20여년 간 포스트모더니즘과 종교다원주의 시대가 요청하는 정의와 평화의 신학만이 아니라, 생태학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생명의 신학을 선구하는 데 기여해 왔습니다.

감신대의 진보적 신학은 우리 시대의 삼중적 폭풍 속으로 질주해 들어갈 만큼 학문적 용기가 대단했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우리가 천국의 제자된 신학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가 섬겨야 할 이 시대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셋째,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공급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라고 불리는 칼 바르트는 1933년에 히틀러의 나찌가 집권하게 된 상황에서 독일의 본 대학교에서 강의하면서 [Theologische Existenz Heute](오늘의 신학적 실존)이라는 신학잡지를 간행했습니다. 바르트는 그 잡지의 창간호에서 독일에서 나찌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명을 “wie vor uns als waere nichts geschen ... Theologie und nur Theologie zu treiben(변함없이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 신학을 오직 신학을 하는 것입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여러분, 바르트의 이 말은 매우 역설적입니다. 왜냐하면 바르트는 바로 그 다음 해인 1934년에 저 유명한 바르멘 선언을 통해 나찌의 신성모독과 우상숭배에 대해 강력한 비판과 투쟁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바르트는 왜 그렇게 급변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변함없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신학만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을까요? 그것은 천국의 제자된 신학자와 신학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명은 언제나 어디서나 기도와 연구, 그리고 ministerium verbi divini, 곧 말씀의 봉사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천국의 제자된 신학자와 신학도는 무엇으로 이 시대를 섬겨야 합니까? 그것은 두 말할 나위없이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 말씀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과 유사한 말씀이 마24:45이하의 말씀입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24:45-47) 여기서 집주인은 인자로 오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집주인의 명을 따라 그 집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사람이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라고 불리는 천국의 제자된 자들입니다. 마태복음의 다른 곳에서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한 데 반해서 여기서는 지혜 있고 충성된 종이라고 했습니다. 왜 지혜 있다고 했을까요? 그것은 그 종이 때를 따라, 곧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때를 따라란 천국의 제자된 신학자와 신학도가 그 시대를 분별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24장은 임박한 하나님의 나라를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만이 아니라 우리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기다리며 때를 따라 그 시대마다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 말씀으로 이 세상을 섬겨야 합니다. 이것이 천국의 제자된 자들의 사명입니다.

이제 새 학기와 새 학년도가 시작됩니다. 여러분은 천국의 제자된 신학자와 신학도로서 하나님 말씀의 곳간인 성경으로부터 새것과 옛것으로 된 생명의 양식을 찾아내어야 합니다.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 말씀에 대한 탐구는 새로운 시대, 미래에 대한 관점에서만 아니라 과거, 곧 교회의 전통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져야 이뤄질 수 있습니다. 저명한 교회사 학자인 펠리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Tradition is the living faith of the dead; traditionalism is the dead faith of the living."(전통은 죽은 자들의 살아있는 신앙이고, 전통주의는 산 자들의 죽은 신앙이다.)

그렇습니다. 천국의 제자들이여!

자신이 천국의 제자된 신학자 혹은 신학도임을 자각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당면한 이 시대를 바르게 이해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공급하기 위하여 밤낮으로 기도, 연구, 말씀의 봉사에 매진하십시오!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길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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