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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신학대학교(METHODIST THEOLOGICAL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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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문

2014년 3월 27일 채플 설교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4-04-07 10:11:04
조회수
12939
첨부파일

너의 집을 세우리라.hwp

 

본문 : 삼하 7:1~12

제목 : 너의 집을 세우리라

본문 말씀은 구약성서 신학에서 다윗의 언약(Davidic covenant)이라고 쓸 정도로 유명한 말씀입니다. 구약은 신약, 새로운 언약,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을 앞서있는 옛 언약으로 보통 우리가 말하는 모세의 언약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구약 안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언약, 복음의 언약의 그림자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다윗의 언약입니다.

다윗의 언약을 보면 다윗이 무엇을 하면 내가 너를 내 백성으로 삼겠다, 내 아들로 삼겠다가 아니라 다윗의 행동을 보지 않으시고 다윗의 믿음을 보시고, 다윗의 순종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다윗을 축복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복음의 언약이다. 오늘 구약성경에 있는 예수그리스도에 새로운 언약, 신약의 그림자 다윗의 언약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래전에 프랭크 로바흐(Frank Laubach)라는 영성가가 있었는데 아프리카를 선교여행 하면서 아들에게 편지를 이렇게 썼습니다. “내 아들아, 네 자신에 작은 문제들과 의심을 위해 기도할 때 네 기도는 아주 얇고 작은 것이 된단다. 그러나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해 네 자신을 나의 통로로 의탁할 때 네 기도는 즉시 크고 고결한 것이 된단다.”

우리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신앙과 신학에 훈련을 통해서 작은 기도에서 큰 기도를 하는 주의 언약의 백성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1924년에 파리 올림픽 400미터 종목에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 에릭 리델이라는 사람이 금메달을 땄습니다. 그는 400미터가 주 종목이 아니라, 영국 최고의 100미터 달리기 선수였습니다. 그런데 100미터 결승전이 주일날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주일을 지키기 위해 경기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영국이 금메달을 딸 수 있는 기회를 버린 매국노라고 영국 전역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그 날 리델은 파리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가서 설교를 했습니다. 이사야서에 있는 주를 앙모하는 자는 달려가도 지치지 아니하고 독수리같이 날아오리라고 하는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하면서 주일성수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다음 주에 있는 400미터 결승에 출전했습니다. 그는 400미터가 주 종목이 아니었기 때문에 결승에 진출도 못 합니다. 그런데 400미터에 마땅한 선수가 없었기 때문에 영국의 올림픽위원회에서 에릭 리델에게 기회를 준 것입니다. 그에 대한 소문이 퍼졌고, 에릭 리델이 출발선에서 준비를 하고 있을 때, 키 큰 한 미국 선수가 와서 쪽지를 전해 주었습니다. 그 쪽지에는 사무엘상 2:30 말씀이 적혀 있었습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에릭 리델이 그 말씀을 손에 쥐고 달렸고, 물론 금메달을 따게 되었습니다.

Jenny라고 하는 에릭의 동생에게 에릭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God you made me for a purpose, 하나님 당신은 나를 어떤 목적을 위해 지으셨습니다. But you also made me fast. 또한 당신은 나를 빠르게 달리게 만드셨습니다. When I run, 내가 달릴 때, I feel your presence. 나는 당신의 임재를 느낍니다.

에릭 리델은 금메달을 딴 후에 중국 선교사로 헌신하였고,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아무도 모르게 순교했습니다.

1. 오늘 삼하 7:1~17의 성경말씀을 보면, 다윗왕은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으로 삼킨바 된 사람”(69:9, 2:17)입니다. 본문을 보면 다윗 왕이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 또는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성이 하루 이틀만의 일이 아닙니다. 유년기부터 전 생애를 거쳐서 죽을 때까지 지속된 그러한 열심인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다윗 왕 당시는 사사시대 말기에서 사울 왕이 다스리는 왕정시대로의 전환기였습니다. 엘리 제사장에 무능하고 사악한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자신들의 잘못된 정치에 인해서 실로 성전의 하나님의 법궤를 이방 블레셋에 사람들에게 탈취당하는 수모를 겪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서 초대 이스라엘에 왕으로 등극한 사울은 왕이 되었지만 하나님의 법궤 회복에는 관심이 없고 오히려 도리어 예배를 자신의 전쟁과 정치적 승리를 위해 동원하는 독재자였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사사시대에 이스라엘은 원수들이 출몰하는 나라가 되었고 사울시대에 하나님의 은총이 빼앗긴 시대 하나님의 이름이 다시 모욕당하는 시대라고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왕이 된 후, 제일 처음에 한 일이 길르앗여아림에 있던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오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다윗이 너무 기뻐서 바지춤이 내려오는 것도 모르고 춤을 추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자신이 왕궁에 편하게 살고 있는데 하나님의 법궤가 장막 가운데 있는 것을 안쓰러워하였다고 나옵니다. 그래서 나단 선지자에게 성전을 건축하겠다는 그의 구상을 밝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시대로부터 건축된 집에 살지 아니 하시고 하나님은 장막 가운데 계시며 백성과 함께 다녔나니하시며, 하나님을 위한 백향목 집을 건축하라고 명하신적이 한 번도 없었음을 상기시키셨습니다.

세상에 제국을 건설하게 되고 왕이 되고 황제가 되면 자기를 위해서 자기의 권력을 위해서 성전을 짓고 우상을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도 처음에 그런 동기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단호하게 사람의 만든 건축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 하나님의 백성 안에 기도하는 곳, 진정으로 예배하는 곳에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고, 그것이 바로 성전이라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안에 있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윗이 주의 집을 위하여 품은 열성은 단순히 성전을 건축하겠다는 그러한 열심만은 아니었습니다. 시편 69편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의 사역에 전심전력을 다하다가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69:2), “까닭 없이 미워하는 자들이 머리털보다 많아졌으며”(69:4) “부당하게 원수가 된 자들이 그를 끊으려 하였고”(69:4) “주를 위하여 비방을 받고 수치가 얼굴을 덮었다”(69:7)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길 때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시험하고 유혹하고 넘어뜨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세상에 나가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고자 할 때 수많은 원수들이, 복음의 원수들이 우리를 위협하고 우리를 무너뜨리려고 덤벼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확 속에서도 다윗은 주의 집을 위한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나에게 미쳤나이다”(69:9)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은 주님의 사역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헌신을 뜻합니다. 요한복음 2:17에도 성전을 깨끗하게 하는 예수님을 가리켜 제자들이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라는 다윗의 말씀으로 기억했다고 하면서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2:19)라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르치심입니다. 주님께서는 교회를 사랑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교회를 당신의 몸과 그렇게 동일시 하셨습니다. 당신의 몸 된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이 이 땅에 하나님에 공동체가 타락했을 때, 훼파 됐을 때 주님은 견딜 수 없는 거룩한 열정과 분노를 느끼시면서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켰다고 하십니다. 채찍을 들어서 장사꾼들을 몰아내고 타락한 교회를 꾸짖고 하나님의 정의를 외쳤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일을 했기 때문에 빌라도 법정에서, 가야바 법정에서 예수님은 성전을 훼파한 사람으로 자신을 하나님과 동일시 한 사람으로 그렇게 고소를 당한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교회를 왔다 갔다 하는 Church goer가 되지 말고 다윗처럼, 예수님처럼,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으로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으로 삼킨바 된 헌신의 사람이 됩시다.

2. 하나님은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인 자, 이 다윗에게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서 데려다,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았노라”(삼하 7:8)고 말씀하십니다.

다윗은 출신 성분이 굉장히 미천합니다. 귀족 가문이 아닙니다. 베들레헴 가난한 소작농의 막내아들 즉, 하나님이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서, 들판의 목동인 너를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그 당대에 하나님 백성의 CEO로 삼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에 주권자가 된 것은 정치 공작적 음모와 야합의 산물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 당시에 사람들에게 다윗의 왕권 장악과정과 그것에 대한 신적 보증은 그렇게 자명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사울왕의 후예들과 수많은 귀족들과 수많은 권세가들이 다윗을 무너뜨리고 다윗을 넘어뜨리고자 모함하고 공격하고 핍박했습니다. 이러한 과정 가운데서 오늘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언약을 맺으시며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본문 8절의 재 확증의 말씀이 나온 것입니다. “내가 너를 데려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았다하나님이 너 다윗을 데려다가 미천한 신분에서 너를 끄집어내어 하나님인 내가 너를 이스라엘에 주권자로 삼았노라 즉,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인 것입니다.

9절은 다윗의 엄청난 군사적 업적과 제국적 위엄구축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결과라고 강조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 하십니다.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삼하 7:9)

다윗이 기가 막힌 환란과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에 주권자로 삼으심으로 다윗은 무엇보다도 자기 때문에 주님을 따르는, 주님을 바라보는 약자들이 가난한 자들이 수치를 당하고 욕을 보지 않게 되어서 기뻤다고 시편 69:6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다윗의 승리는 단지 한 개인의 성공과 축복이 아니라 다윗이 선포하는 대로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백성 모두의 승리요 성공이요 축복이 된 것입니다. 시편 69편에 나와 있는 다윗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곤고한 자가 이를 보고 기뻐하나니 하나님을 찾는 너희들아 너희 마음을 소생하게 할지어다 여호와는 궁핍한 자의 소리를 들으시며 자기로 말미암아 갇힌 자를 멸시하지 아니하시나니 천지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바다와 그 중의 모든 생물도 그리 할지로다. 하나님이 시온을 구원하시고 유다 성읍들을 건설하시리니 무리가 거기에 살며 소유를 삼으리로다. 그의 종들의 후손이 또한 이를 상속하고 그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가 그 중에 살리로다” (69:32-36) 이는 다윗의 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집을 위하는 열성자는 비록 처음에는 무수한 고난과 박해와 어려움을 당하지만 종당에는 하나님께서 그를 주권자로, 능력자로, 성공자로, 승리자로 삼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성공과 승리는 사람들의 시기와 시샘의 대상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을 바라는 자들의 기쁨이요, 행복이요, 찬양거리가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교만하여 내 힘으로 다 이룰 것 같이 하고자 할 때는 우리를 사용하시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다윗처럼 낮아질 때, 여러분이 실패를 거듭하고, 더 이상 이 세상에서의 모든 소망이 끊어질 때, 바로 그 때가 하나님의 도우심이 시작되는 때임을 믿기 바랍니다. 그러니 믿고,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자가 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은 그런 자를 데려다가(어디서? 낮고 천한 데서, 실패의 나락에서) 주권자로, 성공자로, 승리자로 삼으실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자에게 내가 너를 위해서 집을 지으리라고 약속하십니다(삼하 7:11F, 12-13, 16). 하나님은 성전에 거주하지 않고, 다윗을 위해 지어주신 집, 영원한 왕조 안에 거주하실 것임을 뜻합니다. 여기서 영원한 왕조라는 의미는 공평과 정의를 실현하는 데 투신된 왕권, 왕실을 의미합니다.

다윗왕가의 정의와 공평을 실천하는 신실함을 보인다면, 북이스라엘 왕국의 경우처럼 아홉 왕조가 교체하고, 열아홉 명의 왕들이 난립한 그런 혼란스런 왕국이 아니라, 다윗 왕조처럼 단일왕조가 이어지는 그런 복을 베푸시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베푸신 영원한 집에 관한 말씀은 어디까지나 다윗의 후손들에게도 일관되게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의 통치를 대행하라는 책임을 안겨 주시는 말씀입니다.”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자들에게 하나님은 어느 시대나 내가 너의 집을 세우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이 약속의 말씀처럼 위대한 축복과 위로의 말씀은 다시 없습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누리길 기원합니다.

내가 너의 집을 세우리라!” 이 참 말씀을 들은 인생이 얼마나 존귀하고 복된 것입니까! 우리가, 바로, 이 한 말씀, 듣기 위해서, 오늘도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삼켜버림을 받읍시다!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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