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설문
2020년 5월 12일 서울연회 개회예배 설교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20-05-18 11:21:28
- 조회수
- 2024
- 첨부파일
진리의 기둥과 터
이후정 총장. (2020. 5. 12. 기독교 대한 감리회 서울연회 개회예배 설교)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제 40회 서울연회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에게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연회가 한 달 연기되었고 우리 모두 마음에 큰 염려와 소망을 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감신 74 입학 동기요 평생의 친구인 원성웅 감독님이 저에게 연회 개회 설교를 해달라고 부탁했을 때 저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응답했지만 계속 부담이 되어 왔습니다. 설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전하는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지만, 무슨 말씀을 연회에 전해야 하는지 고민해온 것입니다. 연회에 부족한 종을 설교자로 초대해 주신 감독님과 연회원 모두에게 깊은 감사와 존경을 표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저는 1981년 3월 5일 제 1회 서울 연회가 열린 정동제일교회에서 오경린 감독님 주관 아래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신학교 시절인 75년부터 중부연회 백마감리교회를 개척 담임하여 목회하였지만 졸업 후 대학원에 다니면서 다시 성령감리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이 이름은 저를 사랑하신 은사 중 한분이셨던 윤성범 박사님이 지어주신 명칭이었습니다. 하지만 서울 강남 논현동에서 사정을 모른 채 이층건물에 개척한 이 목회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고생 속에 몇 년을 분투하고는 81년에 안수를 받았고 저는 해군 해병대 군목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주신 소명에 따라 신학교 교수가 되고자 미국 유학을 마치고 감신대에 와서 30년 가까이 일하다가 총장의 직책에 다시 부르심을 받고 올해 2월부터 맡은 사역에 전심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저는 항상 신학교 교수직이 가르치는 목회사역이라고 믿고 기도하면서 이 일에 임해 왔습니다. 이 험난한 시대에 주의 종들을 바르게 양육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선한 목자, 주님의 뜻을 온전히 이뤄드리는 참된 성직자들을 교회에 내보는데 저희 교수들은 한 마음으로 높은 비전을 품고 충성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연회를 당하여 저는 오늘 사도 바울께서 주신 말씀을 중심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감리교 첫 연회는 1744년에 행해졌습니다. 그때 무엇보다도 먼저 다뤄진 내용은 웨슬리와 설교자들이 가르치고 선포한 복음의 주제였습니다. 즉 감리교도들이 믿어야할 교리(doctrine), 교훈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What to teach, How to teach, What to do”의 세 가지를 중점으로 토론을 했습니다. 개신교의 교리인 회개와 칭의, 믿음과 행위의 관계가 중요했지만, 감리교회는 웨슬리의 성화와 기독교인의 완전이란 교리를 구원론에서 더 중요하게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거룩한 성도,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를 이 땅에 선포, 확립하고 민족을 개혁하는 사명을 천명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단이 창궐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금번 코로나 사태로 신천지의 문제가 극도로 이 나라를 흔들어 놓은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신약시대에도 가장 중대한 문제 중 하나는 바른 교훈과 교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거짓된 가르침, 교묘하게 위장된 교리들이 교회를 위협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신약 후반의 서신들을 주의 깊게 읽고 살펴볼 때 이 사실은 분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이에 대한 경고와 함께 교회가 바르게 선포하여야 할 교리 즉 가르침을 강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대전염병으로 온 세계가 말할 수 없이 고통당하고 있는데, 우리는 또한 영적, 도덕적인 질병이 이러한 이단과 거짓된 가르침들에 의해 많은 교회를 마비시키고 흔들어 놓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한국감리교회는 <교리와 장정>을 중요한 표준과 기준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교리는 우리 교회가 믿고 있는 신앙의 가르침인데, 사실 상당히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나서는 장정 즉 교회의 법규, 규정들이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감리교회를 치리하기 위해서 총회와 연회 등의 조직을 가지고 있으면서, 상세한 규정들을 필요로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를 볼 때에도 점점 더 법률과 그 세부사항들이 엄격하게 논란, 문제시되고 복잡화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세상나라의 삶, 자연세계도 모두 법칙, 법규가 있으며, 하나님께서 만법의 원칙이 되는 도덕적인 율법을 우리에게 주신 것 또한 분명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법칙, 구원의 법칙을 더 중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성경은 그것을 구원의 메시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교훈이라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믿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여 사는 성화의 삶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이 땅에서 세워지고 완성을 향해 나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오늘 복음을 중시하며 그 복음이 우리 감리교회에서 얼마나 힘차게 생명력을 가지고 전파되느냐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선교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더 이뤄지도록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과 기독교 교리의 확립에 많은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목회적인 관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디모데 전후서와 디도서는 목회서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굳건한 정립을 위해 무엇이 바르게 되어야 하느냐는 것이 중요하게 역설되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바른 교훈이 문제시됨을 알 수 있습니다. 바르고 건전한 교리가 아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건강한 교회를 위해 방비(수호)하는 동시에 치유하는 가르침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르는 사이에 스며들어오는 그럴 듯한 사이비 교리들이 교회를 위협하고 병들게 하며 넘어뜨리려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거짓 교훈들에 대해 사도는 경계하라고 말씀합니다.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이 교회를 흔들어 놓고 성도들을 미혹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덧붙여 규율 있는 도덕적인 삶이 위협당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역사적으로 사실 교리와 장정에서 장정이라고 번역한 discipline, 즉 훈련, 규율을 매우 중시하고 강조한 교회로 알려져 왔습니다. 이것을 오늘의 상황에서 본다면 도덕적인 삶의 본과 지도자 됨을 처음 교회 때부터 중시한 성경의 원칙과 기준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 훈련, 혹은 절제, 절도 있는 도덕적 규율의 삶은 웨슬리의 감리교회 원리와 실천에서 중심이 됩니다. 성화를 향하여 자신을 쳐 복종시키는 십자가의 길과 제자의 공동체를 중시했던 것입니다. 웨슬리가 외쳤던 감리교회의 복음과 교훈 속에는 단지 이론에 그치는 공허한 관념적인 사상이 있었던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규율 있는 훈련과 말씀에의 철저한 순종을 통해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실천적인 공동체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공동체는 당시 형식만 남고 예전에만 치우쳤던 피폐해진 영국 교회를 갱신하고 개혁하여 성령의 생명 넘치는 역사가 펼쳐지는 초대교회의 형태로 돌아가려는 위대한 부흥의 도래 속에 성령의 능력을 경험한 성도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오늘 사도 바울의 말씀에 다시 귀 기울여 본다면, 우리 감리교회는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어떻게 세워야 할지를 고민하며 기도하고 숙고하라는 요청을 듣게 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 그 앞에 엄숙하고 경건하게 서서 우리의 사명과 직임을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뜻 앞에 새롭게 갱신하고 개혁하려는 열렬한 소망과 결단이 이제 요청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한국의 개신교가 큰 위기와 도전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영적, 도덕적으로 다시금 힘차게 생명력을 발휘하여 구원의 위대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는 어떻게 갱신되고 개혁되어야 할까요? 어떠한 점들이 병들어 있으며, 어떠한 방식으로 치유를 받아 우리 교회가 그 가르침과 실천에 걸쳐 건강하고 바른 교회의 모습으로 회복되고 빛을 발하는 초대교회와 같은 교회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 속에서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하나님의 집에서 행해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그 대답이 성경 속에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가르치고 복음의 바른 교훈을 확고하게 세우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웨슬리는 이를 <성경적인 기독교>라는 제목을 가지고 설교했습니다. 설교와 교육과 봉사, 교회의 모든 삶의 원리와 실제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교훈에 확고하게 세우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말씀은 약화될 수 있습니다. 우리 감리교회의 지도자들이 모인 오늘 이 연회에서 우리는 어떠한 복음의 가르침으로 우리가 무장을 했는지 다시 한 번 깊이 반성하는데 관심해야 할 것을 촉구하시는 성령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혹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열심히 배우고 묵상하고 마음에 새기는데 게을리 했는지, 잘못된 거짓 가르침들이 우리 교회를 훼파하려고 들이닥치고 유혹하는 것을 물리치는데 취약한 상태에 처해있지는 않았는지 말입니다. 사실 초기 감리교회에서 웨슬리 목사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목회자의 질적 수준이었습니다. 계속적인 하나님 말씀의 교육과 영적 훈련을 통해 최상의 자질과 품격을 구비한 목회자, 지도자들이 없이는 위대한 부흥운동을 성숙과 완성으로 이끌어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한 구원의 진리, 성령의 역사를 통한 의롭다 함과 거듭남과 거룩하게 됨의 진리, 이 찬양의 형태로 된 복음을 사도는 오늘 본문 16절에서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라고 천명하고 있습니다. 그 영원한 복음의 진리가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단지 인간의 모임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곧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짓고 세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중심이 되고 하나님이 주가 되시는 것이 이 진리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무너지고 인간의 주장과 권리, 인간적인 율법들이 횡행하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선포요 경계의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의 예화를 들어보겠습니다.
“뱅(Bang)이란 한 작은 강아지가 있었는데, 그의 주인을 찾아 축구장 안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모든 방향에서 그 강아지를 불렀습니다. 하지만 주가 되는(dominant) 목소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혼란에 빠져 서 버렸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음성들을 들어왔습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부름들을. 그래서 우리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주가 되는 음성이 없기 때문에. 그때 ‘주인(Master)가 오셨다. 이제 그대를 부르신다.’ 그 권위 있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이 재미있는 예화 속에서 강아지의 주인의 목소리를 영어로 dominant(지배적인, 주가 되는)라고 할 때 그 말은 주님 즉 라틴어인 Dominus에서 온 것입니다. 우리의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 우리는 올바른 방향과 목표(destiny, destination)를 비로소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많은 음성들 속에서 우리는 혼란을 경험할 뿐입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는 인간에게 완전한 주권적인 진리가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진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주어지는 선물이요, 우리는 모두 성령 안에서 그 진리를 겸손히 받아들여야 하는 그리스도의 종들이라는 말씀입니다. 때로 우리는 이 사실을 잊고 마치 우리가 교회의 주가 되는 양 착각하고 오류를 범하기 쉽습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께 굴복시켜 맡기는 주의 종들을 오늘 한국교회는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자신의 사도됨이 결코 인간적인 것이 아니며, 인간으로부터 유래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고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오늘 우리 교회는 이 위대한 진리를 회복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순종을 고백하고 굳게 서약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직 그리스도께, 하나님께, 성령님께 돌이키는 것이 복음입니다!
어떤 집도 기둥과 터전이 없이 세워질 수 없습니다. 모든 집은 그 집을 계획하고 디자인한 건축가, 주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집을 위에서부터 지어내려올 수는 없는 것입니다. 먼저 굳건한 터, 기초를 닦아야 합니다. 여기서 터, 기초라는 말씀은 영어번역 ASV에서 buttress로도 번역되었습니다. 원어의 뜻 속에 지주, 버팀벽이란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지지하고 받쳐주는 기둥과 벽이 없이는 집이 서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중세의 위대한 성자 프란시스가 교황 앞에 가서 회칙을 받으려고 엎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이노센트 교황은 당시에 중세 최고의 권력을 대표하던 황제 같은 교황이었습니다. 그가 이 가난한 제자들의 회를 의아해 여기고 미루던 중에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 속에서 교황은 그 형제 프란시스가 라테란 대성당의 기울어져서 무너지려 하는 집을 어깨로 받쳐 지탱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후 교황은 프란시스 수도회의 회칙을 인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처럼 프란시스는 성자인 동시에 중세교회를 개혁하고 바르게 보수하는 사명을 받았던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의 마지막에 예수께서 설파하신 것처럼, 반석위에 기초를 닦은 집만이 폭풍과 홍수를 이길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은 실은 제가 작년 가을 총장선거를 위해 기도하면서 응답으로 받은 하나님의 계시의 음성이었습니다. 그 반석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요 그 진리의 교훈, 가르침이라고 믿습니다. 나아가서 그 반석의 기초 위에 세울 때 든든한 기둥이 없이는 집을 세우지 못합니다. 교회는 주의 종들, 충성된 사역자들을 중심으로 세워집니다. 오늘 한국 교회의 문제는 어떤 지도자들을 우리가 세워왔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적, 도덕적으로 높은 품격을 갖추고 본을 보여줄 수 있는 지도자들이 교회라는 이 집의 기둥들이 아니겠습니까?
터와 기둥이 흔들리고, 진리를 굳건히 수호하는 지도자들이 찾기 어려워질 때, 우리의 교회는 풍파 속에 좌초되는 배처럼 될 것입니다. 방향과 목표를 분명히 주목하며,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교회를 지키려는 주의 종들을 주님은 오늘 찾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 속에서 성령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오늘 적용됩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3:12) 바로 이 진리의 기둥처럼 교회의 거룩한 종들은 다시 성전에서 나가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어디에 가도, 어디에 있어도, 하나님의 성령의 임재 속에서 그는 성전에 있듯이 주의 빛을 세상에 비추며, 그 자신의 몸을 성전으로 삼아 성령을 좇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복음의 가르침을 성화에 중심 두고 감리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성화를 가리켜 그는 집에 비유하였습니다. 거룩한 교회를 세우는 거룩한 복음의 말씀과 그 가르침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의 은혜로 부여받은 주의 종들이 감리교회를 새롭게 갱신하고 개혁하려고 이 연회에 모였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 위대하고 귀중한 사명을 굳건히 붙잡고 많은 유혹과 풍파를 물리치기 위해 성령의 능력을 받는 종들로 인해 우리 감리교회가 부흥하게 되길 기도합니다. 이전에 우리를 속박했던 것들을 끊고 하늘을 힘차게 나는 독수리와 같은 희망의 감리교회를 비전으로 삼는 서울연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원하고 기도합니다.
- 담당부서 :
- 부속실
- 전화번호 :
- 02-361-9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