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

메인콘텐츠 바로가기

감리교신학대학교(METHODIST THEOLOGICAL UNIVERSITY)

통합검색

대학소개

> 대학소개 > 총장실 > 설교문

설교문

2015년 5월 12일 화요예배 설교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5-05-19 17:37:27
조회수
6883
첨부파일

2015_0512_채플설교.hwp

 

2015512일 화요예배 설교

   

우리는 하나

   

본문: 스가랴 11:1-14 / 요한복음 20:19-23

   

오늘 성경 한 군데 더 읽도록 하겠습니다. 스가랴서 11:1-14절 말씀인데 제가 여러분들에게 천천히 받들어 읽어드리겠습니다.

1 레바논아 네 문을 열고 불이 네 백향목을 사르게 하라

2 너 잣나무여 곡할지어다 백향목이 넘어졌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쓰러졌음이로다 바산의 상수리나무들아 곡할지어다 무성한 숲이 엎드러졌도다

3 목자들의 곡하는 소리가 남이여 그들의 영화로운 것이 쓰러졌음이로다 어린 사자의 부르짖는 소리가 남이여 이는 요단의 자랑이 쓰러졌음이로다

4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는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라

5 사들인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판 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요하게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하고 그들의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도다

6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다시는 이 땅 주민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사람들을 각각 그 이웃의 손과 임금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이 이 땅을 칠지라도 내가 그들의 손에서 건져내지 아니하리라 하시기로

7 내가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련한 양들이라 내가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며 하나는 연합이라 하고 양 떼를 먹일새

8 한 달 동안에 내가 그 세 목자를 제거하였으니 이는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나를 미워하였음이라

9 내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먹이지 아니하리라 죽는 자는 죽는 대로, 망하는 자는 망하는 대로, 나머지는 서로 살을 먹는 대로 두리라 하고

10 이에 은총이라 하는 막대기를 취하여 꺾었으니 이는 모든 백성들과 세운 언약을 폐하려 하였음이라

11 당일에 곧 폐하매 내 말을 지키던 가련한 양들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었던 줄 안지라

12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품삯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라 그들이 곧 은 삼십 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

13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삯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 개를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14 내가 또 연합이라 하는 둘째 막대기를 꺾었으니 이는 유다와 이스라엘 형제의 의리를 끊으려 함이었느니라

아멘.

   

사랑하는 우리 감신 학부. 대학원 학생들 오늘 이렇게 어려운 와중에서도 주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귀한 시간과 장소, 또 여러분이 이렇게 저와 만나서 함께 찬양하며 말씀을 나눌 수 있는 기회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1. 구약성경에 보면 오늘날 우리가 목사직에 해당하는 목자의 직분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민족의 위기가 있을 때 목자의 역할, 지도자의 역할, 종교인의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315절에 보면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로 분단이 되어서 민족이 정신없이 서로 분쟁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사람 예레미야는 곧 닥칠 하나님의 심판, 북왕국에 이어서 남왕국 유다도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간다고 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예언하면서 그와 동시에 하나님이 그 민족을 어떻게 구원하시는가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한 목자들을 주리니 그들이 너희를 지식과 명철로 양육하리라". 하나님 마음에 합한 목자들을 주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약속은 그 당대 이스라엘의 위기속에서만이 아니라 교회 역사 속에서 오고 오는 하나님 나라의 구원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늘 우리에게 약속하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

2. 스가랴서 11장에 보면은 예레미야 시대 이후 드디어 포로기를 맞이하게 되고 이제 포로 상테에서 하나님의 은혜로운 민족의 귀환을 기대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받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빛이 동터올 때 그 어느 때보다도 어둠이 짙어지는 시대 스가랴는 11장에서 오늘 말씀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유다의 목자들의 애곡이 다하고 있습니다. 유다왕국의 절정에서 보여주었던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의 활약이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마치 레바논의 백향목이 넘어지고 바산의 상수리 나무숲이 엎드러진 것과 같다고 비유하고 있습니다. 유다의 목자들은 이제 어차피 잡혀죽을 양떼를 먹이는 비참한 자들일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은총의 막대기와 연합의 막대기를 취하여 하나씩 하나씩 꺾으셨습니다. 은총의 막대기를 꺾으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백성과 세운 언약을 폐기하신다는 것입니다. 연합의 막대기를 꺾으신다고 하는 것은 유다와 이스라엘 형제의 의리를 끊으려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공동체, 이것이 부부와 가족관계 이던지 학교와 교회던지 구성원들 사이의 연합이 깨어지고 분쟁이 생기는 것은 이미 하나님과 그 공동체 사이에 은총의 언약이 깨어진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공동체의 우환은 하나님의 징계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화목과 회복을 위해서는 구성원들간의 관계회복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지만 그에 앞서 공동체 구성원 각자가 총장인 저부터 시작해서 우리 학생 한사람 한사람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회개가 더 시급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이 깨어질때에 공동체의 불화와 불행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이 깨어질때에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숭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시작이 권력이든 자기의 지식이든 자기의 어떤 힘이든 인간을 숭배하고 하나님 사랑을 포기하고 자기를 사랑하게 되는 것. 그게 바로 우상숭배요 우리의 죄악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일, 회개하는 일, 우상숭배의 죄를 참회하고 죄 씻음을 받아야 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3. 벤자민 메이스라고 하는 미국의 흑인 교육학자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밤이 어두울수록 별을 우리는 잘 볼 수 있다’. 이 밤이 어두울수록 하나님이 구원의 여망을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그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13:1) 그날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소망 속에서 하나님께서 메시야 기름부음 받은 주님을 보내실 때까지 그날에 우리의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을 열어주시는 것을 소망하면서 스가랴는 오늘 11장에 아픈 글을 적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모르는 이방인들의 회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의 회개, 웨슬리 목사님의 표현대로 하면 믿는 자들의 회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의 회개가 중생과 거듭남으로 이르게 한다고 한다면, 믿는 자들의 회개는 이미 중생한 자들의 회개이기 때문에 그것은 더러움을 씻고 깨끗하게 하는, 정화하는, 거룩하게 하는, 성화에 이르게 하는 회개인줄로 믿습니다. 우리 감신대가 그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4. 이 스가랴서 31-4절을 보면 매우 신비한 장면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 당대 유다왕국의 대제사장이 여호수아라고 하는 사람이었는데 그가 스가랴의 환상 중에 보니까 하나님의 천사 앞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 앞에 서 있는데 그의 오른쪽에서 사단이 여호수아를 대적하고 있습니다. 사단이 여호수아를 하나님 앞에 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사단을 도리어 책망하시면서 또한 동시에 하나님 앞에 누추한 옷을 입고 서 있는 여호수아에게 함께 책망하시면서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 같은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나무라십니다. 그 책망의 연장선상에서 34절에 보면 여호수아 대제사장이 하나님 앞에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기 때문에 여호수아의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고 천사들에게 하나님이 명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여호수아에게도 이야기 하십니다.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여러분 인간이 마음대로 자기 죄를 벗고 입고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벗겨주시고 하나님이 우리의 의의 옷을,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혀주셔야 할 줄로 믿습니다. 철저한 회개와 죄 씻음을 통해서 죄와 더러움이 제거가 될 때에 사단이 공동체를 참소하는 고소하는 악한 일들이 더 이상 일어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열려지게 될 때에 그 공동체는 치유의 길로 들어서게 되고, 그 공동체의 치유만이 아니라 그 공동체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온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침 받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죄 씻는 샘이 열리게 될 때에 그것은 생수가 되어 스가랴 138절에 보니까 그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이 냉천동, 찬 샘골에서 주님의 성령의 생수가 터져 나와서 오늘 우리의 이 아픔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어서 우리 감신대의 거룩한 부흥의 계기가 되어서 우리 감리교신학대학교만이 아니라 이 생수가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에 나아가 그리스도의 복음화의 역군들로 하나님이 여러분을 세워주시기를 축원합니다.

   

5. 요한복음 73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수전절이 지난 다음에 제자들 앞에서 이 수전절에 많은 무리들을 바라보시면서 목마른 자들은 다 내게로 와라. 마셔라”. “누구든지 그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오리라”. 여기서 생수는 성령을 가리키는데, 예수님께서 아직 영광을,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시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 생수가 그들에게 임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미리 아시고 예언하시면서 누구든지 그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와서 목마른 자만이 아니라 목마른 수많은 사람들을 채워주시고 치유해 주시고 구원해 주신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생수의 근원이 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단순히 죄를 씻는 것만이 아니라 목마름을, 영적인 갈망을, 영적인 그 소원을 해결해 주는 생명수를 마시는 것이 예수님을 통해서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 공동에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존재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 살아계신 성령님을 만나시게 될 때, 모시게 될 때 그로부터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게 될 것입니다.

   

6. 예수님도 선한 목자시죠. 예수님도 이 땅에 계실 때, 유다의 백성들을 바라보시면서 목자 없는 양들을 바라보시는 것 같이 바라보시면서 그 마음에 불쌍히 여기사 측은히 여기사 하나님께 눈물의 기도를 드리신 것을 볼 수가 있고, 바로 그들을 위해서 아니 모든 인류를 위해서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선한 목자의 길을 가셨던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2019-23절을 보면 바로 부활절기에 있는 말씀입니다. 부활의 공동체가 어떻게 성령을 받아 두려움이 변하여 평화가 되고,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는데 제자들은 두려움에 휩싸여서 유대인들이 두려워서 방안에 꼭꼭 문을 잠그고 숨어 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노크도 하지 아니하시고 조용히 제자들의 서클, 제자들의 모임 한 가운데 홀연히 나타나셨습니다. 십자가 달려 돌아가신 후에 제자들의 공동체는 그야말로 세상이 두려워 꼭꼭 숨어 있었지만은 사랑하는 스승을 잃어버렸다는 슬픔마저도 압도했던 세상의 박해에 대한 두려움에 잡혀 그들이 어찌할 바를 모를 때 그들 가운데 나타나신 주님을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을까요. 얼마나 송구했을까요.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다면 그 제자들은 공동체가 아니라 오합지졸이 되어 뿔뿔이 흩어졌을 텐데 주님께서 그들 가운데 오셔서 오늘 우리 감신대 공동체 안에 부활하신 성령님께서 오시기를 축원합니다.

   

7. 우리는 간혹 부활절이 없는 사순절의 삶만을 살아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삶은 복음의 기쁨과 평화를 맛보지 못하는 무기력한 삶입니다. 우리는 부활절의 사람들입니다. 요한복음 2019절에 보니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공동체, 두려움과 슬픔에 압도당하고 있는 자들에게 오사, 가운데 서서라고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제자들이 둥그렇게 원을 이루고 마주보고 서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만해도 서로를 원망하면서 너 때문에 예수님이 달려 돌아가셨다’. ‘너가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았냐’, ’네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았냐‘, ’너 먼저 도망하지 않았느냐‘. 원 주위에서 바라보는 상대방의 다름이 틀림으로. 거부감으로 다가왔는데 예수님이 오시니까 상대방의 다름이 틀림이 아니라, 걸림돌이 아니라 경이로운 하나님의 은사요, 서로 축하해 주고 격려해줘야 할 은혜의 일치 속에서 다양성 속에 일치할 수 있는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그러한 근거가 됐던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며칠 전 만 해도 같은 식탁에 마주 앉아 예수님이 계실 때에 최후의 만찬을 나누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로운데 바로 그분이 다시 살아나셔서 그들 공동체 한가운데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8. 여러분 진정한 공동체의 회복은 성찬에 참여하면서 부활하시사 그리스도의 영으로 공동체 안에 오시는 예수님을 모실 때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만이, 성령님만이, 우리를 하나 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자는 누구나가 죄인이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자는 누구나가 의의 아름다운 옷을 입을 수가 있습니다. 공동체 한 가운데 오신

그래서 성찬의 식탁의 임재를 통해서 구성원 각자의 몸속에 모셔지는 주님은 오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샬롬”. 그리하여 유대인들을, 세상을 두려워했던 사람들의 그 두려움이 변하여 살롬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면서 제자들에게 나다하셨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제자들은 기뻐하면서 복음의 기쁨을 맛보면서 평화를 느끼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줄 알았던 주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저들은 용감한 전도자들, 사도들이 되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2021절에서 예수님께서 이런 파송의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하나님은 여러분이 쓰임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면서 성령을 받아라’ ‘성령을 받아라이제 제자들은 두려움에서 평화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그 거룩한 변화를 체험하면서 그러한 하나님의 평화와 복음의 기쁨을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단순히 제자가 아니라 사도’,‘apostle’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된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합지졸의 공동체가 주님을 모시고 변화되었을 때 그들은 선교의 공동체가 되었던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다. ‘One Holy Catholic Apostolic Church’, ‘아포스톨릭, 보내심을 받은 교회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평화와 복음의 기쁨을 전하기 위해서 공동체와 그 구성원 각자가 지녀야 할 능력은 무엇일까요? 성령입니다. 성령입니다. 하나님의 숨입니다. 복음의 능력인 성령을 받아야만 우리는 선교의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사도적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는 그 구성원들 각자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사람을 병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치유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멸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구원하는 능력을 가지는 것인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9. 우리 감신대가 그런 공동체가 되기를 날마다 소망하면서 기도를 드립니다. 여러분도 기도를 함께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2023절에 예수님이 간곡히 부탁하십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 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엄청난 권세입니다. ‘죄를 사하는 권세이것은 예수님의 기도의 정신에 입각해서 해석해야 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인간의 도덕적 능력으로는 나의 대적과 원수의 죄를 용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어떻게 우리 동족 아니 내 가족을 죽인 공산주의자를, 미군의 연합군을, 남한의 군대를 우리가 서로 용서할 수가 있을까요. 제 아무리 중재하고 타협한다 할 지라도 죄를 사하는 권세는 성령님에게 있습니다. 성령 충만함 받은 사람에게 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을 보세요. 오직 성령을 받은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은헤와 복음의 권세로 죄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죄를 사하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죄를 사하는 권세자의 모습은 약자의 모습이 아니라 진정한 강자의 미덕입니다. 이제 우리 가정, 교회, 특별히 우리 학교 더 나아가 민족과 세계에 가장 필요한 것은 죄를 사하는 권세를 지닌 그리스도인, 죄를 용서하는 은혜와 능력을 가진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서로 정죄를 할 때, 서로 고소를 할 때, 그 가정이나 교회나 학교나 공동체는 와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너희가 서로 물고 뜯으면 피차에 멸망할까 조심하라사도 바울의 권고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서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자신에 대한 상대방의 죄를 용서하게 될 때에 성령 충만한 자는 죄를 사하는 권세를 통하여 그 능력을 행사하여 이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영광스런 도구가 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은 세상이 보기에 어리석고 미련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십자가 지시고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도, 진리이신 십자가의 도의 능력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세상이 보기에 약하고 미련한 것 같지만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요 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세상의 지혜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함이 세상의 강함보다 강합니다. 이러한 길을 십자가의 도를 쫒아가는 것이 외롭고 바보스러운 것 같지만 그러나 그것이 진정 참 제자의 길, 참 사도의 길, 참 그리스도인의 길, 참 감신인의 길 인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게 될 때 주님은 기뻐하시고 우리를 복주시고 끝내는 여러분을 승리하게 할 것이며 깨어진 공동체를 다시 하나 되게 하실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할렐루야.

   

외로움도 견뎌나가겠소. 바보란 소리를 들어도 좋소. 나를 비웃는 그 비웃음들을 주 사랑으로 돌려주겠소. 이 모든 것이 힘들다는 것을 주님은 나에게 알려줬소. 주님의 사랑은 너무나 넓고 크오. 그래서 나는 살아가겠소. 우리 모두 손을 내밀어서 넘어진 형제 일으켜 주세. 사람이 살면 한 번 사는 것. 걸음 멈추고 생각해 보세. 시냇물이 강으로 흘러서 저 바다와 하나가 되듯이 우리는 하나요. 당신과 나도 하나. 우리는 하나가 되야 하오아멘.

비밀번호 입력
담당부서 :
부속실
전화번호 :
02-361-9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