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2015년 1학기 종강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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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등록일
- 2015-06-09 17: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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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학기 종강예배 설교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본문: 스가랴 4:1-10
이번 학기 여러분들 여러 가지로 어려운 중에서도 한 학기를 잘 인내하면서 오늘 종강으로 예배드리게 된 것에 대해서 기쁘게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아직 여러분 시험이 남아있고, 여러 가지 정리할 들이 할 일 들이 있지만 어쨌든 몇 주안에 여러분들은 방학을 맞이해서 사역의 현장으로 또는 안식의 자리로 많은 기도와 또 여러 가지 영적 육적 연단의 시간을 갖게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지난주에는 우리가 성령강림절 후 제 첫 주가 있었고 특별히 삼위일체 주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주에는 웨슬리회심 주간 행사이후에 여러 가지 참 좋은 일들이 있어서 기뻤지만은 수요일 저녁에 그 행사를 모두 마치고 목요일 새벽기도 준비를 하는 중에 잠깐 꿈을 꿨는데 칠흑 같은 어둠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깜깜한 밤에 차를 몰고 가는데 주위에 빛이 없어요. 세상에 빛이 없고 암흑입니다. 자동차도 보니까 전조등이 꺼져있고 자동차 안에 기기도 불이 들어와 있지 않습니다. 운전대를 몰고 가는데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을 했습니다. 차안에 가스가 기름이 없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몸서리치다가 깨어 새벽에 기숙사 학생들과 함께 새벽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러면서 영국의 시인이 노래했던 그 어떤 시가 생각이 났습니다.
나를 감싸고 있는 밤은
온통 칠흑 같은 암흑
나는 그 어떤 신이든 신께 감사하노라
내게 정복당하지 않는 영혼 주셨음을
잔인한 환경의 마수에서
난 움츠리거나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운명의 몽둥이에 두들겨 맞아
내 머리는 피 흘리지만 굴하지 않노라
분노와 눈물의 이 땅을 넘어
어둠의 공포만이 어렴풋하다
그리고 오랜 재앙의 세월이 흘러도
나는 두려움에 떨지 않을 것이다
비록 문이 좁을 지라도
아무리 많은 형벌이 나를 기다릴지라도 중요하지 않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나는 내 영혼의 선장
이 시는 윌리암 어네스트 헨리(William Ernest Henley)라고 하는 영국 17세기 위대한 시인의 유명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헨리 시인과 같은 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그 두려움 속에서 떨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러면서 마치 오늘 우리 감신대, 한국교회, 이 민족과 세계가 직면한 영적 암흑, ‘블랙 아웃’ 전기가 꺼지고 모든 것이 멈춰 서는 두려움의 상황인 것을 영적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영적인 암흑이 올 때마다 성경에서는 또 교회사에서 보면은 하나님께서는 그 흑암 가운데에서도 소망을 주시고 새로운 영적 부흥과 거룩한 변화를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30년 전에 아펜젤러 선교사님 내외와 그리고 언더우드 선교사님이 이 땅에 부활절 아침에 복음의 빛을 들고 이 땅을 찾아온 것이 복음 선교의 시작이었습니다. 또 112년 전에는 로버트 하디 선교사님이 원산에서 부흥운동을 시작하셨습니다. 5년 동안 열심으로 선교했지만 열매가 없어서 영적인 흑암 속에서 고민하다가 기도하고 성경 읽고 특별히 스가랴 4장 6절 말씀에 이르러서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는 말씀을 읽게 될 때에 ‘아 지금까지 내가 서양 선교사의 교만을 가지고 나의 지식과 나의 힘을 가지고 선교하려고 했구나’ 하면서 반성하고 회개하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하디 선교사에게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셔서 원산 부흥운동 그리고 4년 뒤에는 평양 대 부흥운동을 통해서 이 민족의 첫 번째 부흥의 역사가 임했던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우리 감리교회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웨슬리 목사님 277주년 우리가 웨슬리 목사 회심 기념주일을 갖기도 했습니다만은 그 분도 역시 영적인 흑암 속에서 영국교회의 뼈대만 앙상히 남은 그 국교의 목사로서 거리에 내 던져져진 그 시대의 가난한 자들, 교회에 갈 수 없는 그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거리로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고자 했지만 그 마음 가운데 성령의 확증이 없어서 고민하다가 1738년 5월 24일 저녁 8시 45분 올더스게이트가에서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위해 자신과 같은 죄인을 위해 죽으셨다고 하는 구원의 확증을 얻게 될 때에, 저가 복음의 빛을 들고 기쁘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던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이 감리교운동의 시작이었습니다.
20세기의 저명한 웨슬리 연구가인 알버트 아우틀러(Albert C. Outler)는 웨슬리 회심을 올더스게이트에서 일어난 뜨거운 체험만이 아니라 동시에 조금 전에 말씀 드렸지만 죄인들을 향한 웨슬리 목사의 따뜻한 마음의 변화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웨슬리 목사가 상당히 뒤에 1777년 그의 말년에 이르러 영국 런던에 ‘시티로드가에 있는 예배당에 초석을 놓으며’ 라고 하는 설교에서 감리교 부흥운동을 회고하면서 ‘그것은 사랑의 종교의 부흥이었다’ 이렇게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결한 종교, 때 묻지 않은 종교, 순수한 사랑의 부흥이었다라고 이야기하면서 우리 감리교도에게 있어서 부흥의 진정한 의미는 이 사랑의 종교의 부흥, 하나님을 향한 사랑,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뜨거워지고 따뜻해지는 마음의 변화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감리교 부흥운동의 핵심을 웨슬리 목사님은 영국성공회의 기도문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 기도문은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Cleanse the thoughts of our hearts by the inspiration of thy Holy Spirit”, “당신의 성령의 영감으로 우리의 마음의 생각을 깨끗하게 하소서”, “that we may perfectly love thee, and worthily magnify thy holy name”,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 당신을 온전하게 사랑하게 하시고 그리고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높이게 하옵소서.”
여러분 이것이 감리교부흥 운동을 일으켰던 사랑의 부흥, 이웃을 향한 사랑을 우리가 행하기에 앞서서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는 그 사랑의 부흥, 모든 우상을 척결하고 우리 마음속에 있는 온갖 가증한 우상들을 우리가 모두 척결하고 모두 부셔버리고 자기를 부인하고 모든 정과 욕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나의 마음속에 있는 온갖 잡다한 생각들을 정화시켜서 성령으로 깨끗케 해서 오직 하나님만을 온전하게 사랑하게 하옵소서.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을 높이게 하옵소서 라고 했을 때 진정한 영적 부흥과 거룩한 변화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우리시대는 바로 이 부흥과 복음화를 회복시켜줄 새로운 영적 각성의 시대가 임하고 있다라고 저는 믿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이 성경 말씀 본문은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려는 스룹바벨에게 선지가 스가랴가 전해주는 말씀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여러분, 그 시대는 어떤 시대였습니까? 성전이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포로로 잡혀간 때였습니다. 제사장이 타락했습니다. 예언자들이 거짓 예언자 노릇을 했습니다. 백성들이 온갖 가증한 죄로 우상을 섬기며 더렵혀진 시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스룹바벨을 통해서 성전을 재건하기 위하여 단순히 건물만 재건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재건을 위하여 하나님은 스룹바벨을 선택하셨지만 그것은 결코 힘으로나 능력으로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그 기초가 성전의 기초가 놓인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함께 읽은 이 스가랴의 환상은 여섯 번째 환상인데, 여기에서 스가랴가 본 금 등잔대, 금 등잔은 순금 등잔대라고 여기서 이야기 하고 있는데 성경에 여러 곳에서 이 금 등잔대에 대한 기록이 나오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5장에 보면 성막에 있었던 금 등잔대, 일곱 촛대로 되어있죠. 일곱 등잔으로. 열왕기상 7장 이하에 보면 솔로몬 성전에 있었던 일곱 금 순금 등잔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스가랴서에 나와 있는 금 등잔대, 더 나아가서 계시록 1장 12절, 20절에 일곱 순금 등잔대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스가랴서 4장 1절과 5절 사이에 나와 있는 이 순금 등잔대 이야기는 출애굽기나 솔로몬 시대에 있었던 금 등잔대와 달리 실제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은 스가랴의 환상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이미지나 사진으로 금 등잔대의 모습을 보게 되죠, 가운데를 중심으로 해서 좌로 세 개 우로 세 개 그래서 도합 일곱 개의 등잔대가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제사장이 올리브 감람유를 집어넣어서 거기다가 불을 붙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가랴가 본 이 금 등잔대는 그 모습이 상당히 달랐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기름을 부어서 불을 붙이는 그러한 금 등잔대가 아니라 그 순금 등잔대 좌우에 올리브 나무 두 그루가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올리브 나무로부터 금관이 연결되어 있어서 기름그릇에 올리브 기름이 담겨지게 되면 거기에서부터 순금 등잔대에 일곱 관으로 타고 들어가서 흘러들어가서 거기에서 불이 붙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사람의 손을 통하지 아니하고 제사장의 노력을 통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올리브 나무, 하나님의 기름 부은 종을 가리키는 대제사장이요 이스라엘의 약속의 왕이신 메시야를 가리키는 이 올리브 나무로부터 직접 기름이 공급되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에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성령이 직접 일하시는 그 의미를 오늘 본문은 담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 되지 아니한다’ 라고 하는 것은 힘은 여기서 인간의 군사력이나 재력, 자원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기서 능력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군사력이나 재력이나 능력을 동원해서 강한 의지를 가지고 강한 결심을 가지고 그것을 행사하는 인간의 뜻과 결심과 의지력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자원이나 인간의 결심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지식의 힘이나 돈의 힘이나 의지력이나 인간의 어떤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되는 것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영원히 그러합니다.
금 등잔대에 성령의 기름이 부어지고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게 되면 거기에 불이 붙습니다. 그 불빛은 그 등잔대의 빛은 세상의 빛을 발하라고 부름 받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 스가랴서 4장에는 이 빛이 하나님의 눈이라고 특히 4장 10절에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빛이라고 하는 것은 쫘악 뻗어 나가죠. 세상 끝까지 어두운 곳을 밝히는 것입니다. 일곱 등잔대의 일곱 빛이 온 세상을 두루 살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눈이라고 스가랴 선지자는 적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인간의 힘으로 능으로가 아니라 오직 성령의 도우심으로 세상의 빛이 되어서 하나님의 눈이 되어서 세상을 밝히고 세상을 구원할 사명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에 보면 “나는 세상의 빛이니(요8:12)”,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성령으로 태어나시고 성령으로 세례 받으시고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에서 시험을 이기시고 성령으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성령으로 부활하셔서 지금도 성령으로 일하시고 우리 가운데 계시는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라 나를 떠나서는 나의 영을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령강림절기에 우리 모두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아서 나의 힘으로 나의 능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할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주님의 영으로 주님의 도우심으로 주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있는 복된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
이 스룹바벨에게 스가랴가 바로 이 말씀을 전해주면서 스룹바벨이라고 하는 사람은 그 당시에 정치지도자였는데 하나님 앞에 바로 선 정치지도자였습니다. 안팎에 많은 대적들이 있었습니다. 바깥에서 이민족이 성전 짓는 것을 방해하죠. 안에서 백성들이 분열하죠. 공격하죠. 스룹바벨의 위치가 얼마나 위태로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스룹바벨에게 오늘 4장 6절의 말씀을 주시면서 몇 가지 약속의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볼 수 가 있습니다. 오늘 읽은 4장 7절을 보니까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너무나 멋진 말씀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큰 산이라고 하는 것은 스룹바벨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사람 앞에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어야 되는 하나님의 사명자 앞에 있는 장애물인 것입니다. 큰 장애가 큰 대적이 하나님의 사람을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려고 하는 이 스룹바벨을 방해하는 거대한 사단의 세력, 인간의 방해꾼들, 안팎에 있는 여러 대적자들이 스룹바벨을 방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령으로 오늘 스룹바벨에게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여러분 예수님의 기도 가운데 그런 기도가 있죠. “네가 믿음 가운데 기도하면 네가 믿음이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다 한다면 이 산이 들어져서 저 바다에 빠지라고 할 때 그렇게 되리라” 스룹바벨이 성령으로 기름 부음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내 종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스룹바벨 앞에서 네가 평지가 되리라”. 귀한 약속의 말씀인 줄로 압니다. 강한 용기를 가져야 됩니다. 당장 큰 산이 붕 날아가지고 사라지고 바다에 빠지는 게 아니죠. 그러나 큰 산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바라보고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내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믿음의 용기가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1910년에 미국의 유명한 시어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 대통령이 ‘The Man in the Arena’, ‘경기장의 남자’라는 유명한 연설을 했습니다. 이 연설 중에 이러한 말이 있어서 여러분에게 인용해 드립니다. “비판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강자가 실수하는 것을 지적하거나 어떤 행동을 실천한 사람에게 이러쿵 저러쿵 논평하는 자 말입니다. 공을 돌려야 할 주인공은 이런 사람입니다. 실제로 경기장에 나선 얼굴이 땀과 먼지와 피로 범벅된 사람입니다. 실수를 하고 거듭 기대에 못 미친 사람입니다. 착오와 부족함이 없는 시도란 없는 법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바로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 위대한 열정과 위대한 헌신을 아는 사람, 값진 대의에 자신을 버리는 사람입니다. 잘해봤자 끝에 가서야 위업을 달성할 수 있음을 아는 사람입니다. 못해도 최소한 과감히 도전하다가 실패를 한다면 승리나 패배도 모르는 냉정하고 소심한 영혼들과는 결코 동등한 위치가 아님을 아는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 믿음의 위대한 사람입니까? 성공과 실패를 가늠할 수 없는 캄캄한 암담한 현실 속에서 거대한 큰 산이 우리를 막고 있는 현실 속에서 스룹바벨 같은 사람은 믿음의 사람은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내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고 믿음을 가지고 정면으로 돌파하는 사람인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용기를 가지세요. 오늘 우리의 현실이 여러분의 현실이 민족의 현실이 교회의 현실이 우리 신학교의 현실이 어둡고 암담하다 할지라도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스룹바벨이 주는 하나님의 용기를 가지고 믿음의 용기를 가지고 문제를 회피하지 아니하고 정면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믿고 나아가는 사람인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성령께서 스룹바벨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7절 중반절에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여러분 스룹바벨이 드디어 교회의 기초를 놓고 교회의 머릿돌을 놓게 된 것입니다. 교회의 기초를 놓고 이제 머릿돌을 놓게 될 때에 백성들이 너무나 기뻐가지고 ‘은총, 은총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지도자 스룹바벨에게 있을지어다’ 축복하면서 기쁜 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은 교회의 머릿돌을 놓는 사람입니다. 그 교회의 머릿돌은 그냥 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기초는 인간의 신학이 아니라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인간의 재력이 아니라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인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만이 The way, The truth, The life,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오직 예수님! 고린도전서 2장 2절 이하에 보니까 사도바울이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2:2),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다 하게 하였노라”(고전2:4-5). 여러분 사도 바울도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스룹바벨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초대교회의 기초를 놓으면서 사도 바울의 신학이 아니라 사도 바울의 공로가 아니라 사도 바울의 어떤 재주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성령의 능력으로 그의 지혜 있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십자가의 능력과 부활의 능력으로 교회의 기초를 놓은 분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사도로 축복하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과 저는 교회의 기초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공로로 은혜로 언제든지 주장하고 그 기초를 놓아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음을 믿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오늘 본문 말씀 9절에 보니까 “스룹바벨의 손이 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은즉 그의 손이 또한 그 일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스룹바벨의 손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은즉 그의 손이 또한 그의 일을 마치리라”. 하나님의 세 번째 약속입니다. 여러분 스룹바벨이 머릿돌을 놓고 교회의 공사를 처음 시작했는데 완성하는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까요? 성서학자들이 계산한 시간은 30년에서 40년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만큼 큰 산이 있었던 거고 많은 방해가 있었던 거고 많은 대적이 있었던 거고 많은 연약함과 많은 시험과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죠. 여러분 스룹바벨의 성전을 우리가 제 2성전이라고 하죠. 솔로몬 성전 제 1성전 그리고 헤롯이 지은 성전은 제 3성전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방인이 지었기 때문에 정통성이 없습니다. 그러면 제 2성전이라고 하는 스룹바벨의 성전은 솔로몬 성전에 비해서 볼 때 헤롯대왕이 지은 성전에 비해서 볼 때 그 외관은 초라합니다. 작고 초라합니다. 그래서 오늘 10절 말씀에 보니까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작은 일의 날 작은 성전 지어놓고 무슨 그렇게 자화자찬하느냐 이런 비아냥을 스룹바벨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성전의 외면적 사이즈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스룹바벨의 성전은 그 어떤 성전보다 영적으로 깨끗하고 거룩한 성전으로 우리 성경에서는 기억되고 있는 것입니다. “네가 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은즉 스룹바벨아 내가 너희에게 약속하노라. 너의 손이 또한 그 일을 마치리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스룹바벨은 그 믿음을 가지고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30년 40년을 걸쳐가지고 성전을 완성하고야 말았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사람들,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된다고 하는 것을 믿는 사람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약속을 지켜주십니다. “큰 산아 스룹바벨 앞에서 네가 무엇이냐 네가 평지가 되리라” 평탄한 길을 열어 주십니다. 인내하고 용기를 가지고 참고 기다려야 됩니다. “네가 머릿돌을 놓으리라 교회의 기초를 예수 그리스도와 그 은혜 가운데 놓게 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네가 이 교회의 기초를 놓았은즉 이 일을 시작했은즉 네가 이 일을 마치리라.” 하나님의 사역을 마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그러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축복을 받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사가들은 예수님 오신 다음에 처음 500년 동안 아프리카와 소아시아 이 지구 남반구의 교회 시대였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500년 교회의 축이 서양으로 갔습니다. 로마와 유럽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또 500년 종교개혁과 요한 웨슬리 시대 완전히 유럽과 미국으로 교회 대부분의 힘이 이동을 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1981년을 중심으로 해서 교회의 축이 기독교의 축이 다시 지구 남반부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바로 이 때 우리 여러분들이, 저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신 것입니다. 새로운 영적 부흥과 새로운 복음화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가 이제 한국 교회와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남미의 교회를 통해서 이루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실망하지 말고 좌절하지 말고 절망하지 말고 오히려 이러한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교회 금 촛대에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시고 ‘주님 저도 스룹바벨과 같이 쓰임 받게 해 주옵소서’, ‘주님 저도 요한 웨슬리처럼 쓰임 받게 해 주옵소서’, ‘하디 목사님처럼 선교사님처럼 쓰임 받게 해 주옵소서’ 기도하시면서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준비하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서 영적부흥을 이 민족과 세계를 위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부족한 저를 감신대 13대 총장으로 세우신 이유는 우리 감신대가 새로운 영적 대 각성운동의 발원지가 되게 하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저는 이미 늙었습니다. 그러나 감신대 새벽이슬 같은 여러분들이 있기 때문에 한국교회의 부흥과 세계 복음화의 새로운 주역이 세우지리라고 믿습니다. 절망하지 맙시다.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용기를 가지세요. 우리는 약하지만 주님은 강하십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성령님은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용기를 가지고 인간의 힘이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을 믿는다면 모세도 80세의 나이에 부름 받았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특별히 여러분을 통해 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요엘2:28). 환상을 가지세요. 꿈을 가지세요. 용기를 가지세요. 실망하지 마세요. 성령의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을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쓰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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