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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동 총장, 아펜젤러 제막식 참여 [조선인의 마음을 연 아펜젤러 ‘순교 기념비 제막식’, 개천절에 열려···“죽음 너머 마음에 부활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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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속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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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0-04 09: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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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펜젤러 순교기념비의 제막 장면
순교 기념비의 모습. 어청도가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팔각정에 세워져 있다.
제막식을 마치고 기념 촬영 중. 총 38명이 행사에 참석했다.
기원전 2333년전, 한민족이 처음으로 나라를 얻은 날을 기념하는 개천절. 이날을 하늘을 여는 날이라고 한 것은 이 땅에 민족을 시작하게 해 준 하늘에 감사하는 뜻을 나타내기 위함일 것이다.
2022년 6월 11일. 어청도에 아펜젤러선교사의 순직 장소를 기리는 표지석이 세워졌고, 이를 기리기 위한 제막식이 2024년 10월 3일. 바로 이 민족의 시작을 기념하고 기뻐하는 개천절에 열려 묘한 대조를 이뤘다. 아펜젤러 선교사가 이 땅에 들어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이 민족을 깨우쳐 새로운 삶을 열었던 것을 기념하는 일이 더욱 뜻이 있었지 않나 싶었다.이날 제막식은 정말 힘들게 이뤄졌다. 호남특별연회 초대 박용호 감독 때 비를 세우고 코로나로 인해 함께 기뻐해야 할 제막식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2대째인 김필수 감독에 이르러 제막식을 하려고 했으나 7월, 8월 큰 비로 인해 모두 연기해야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10월 3일 38명과 함께 어청도로 건너가 가렸던 막을 거둬냈다. 막을 거둠으로써 아펜젤러 선교사에게 빚졌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은혜를 갚는 느낌이었으리라.사실 제막식을 열기로 한 10월 3일도 거대한 태풍 끄라톤이 올라올 것이라고 하는 세계의 많은 기상청들의 예고에 쉽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간절한 기도를 한 성도들의 기도에 감복한 하나님이 먼 대만 땅에서 유턴시키고 아예 그 자리에서 소멸시켜 버리셨다. 몇 번의 좌절이 있었기에 끄라톤의 소멸은 믿는 자들에게는 기도의 응답이요, 아펜젤러를 기리기 위한 순수한 마음을 받아주신 하나님의 손길임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바다는 더욱 잔잔했고 날씨는 살갖을 살짝 건드릴 정도로 부드러웠으며, 햇볕은 가을의 전형적인 강도로 비쳐 뜨겁지도 춥지도 않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날씨였기에 제막식에 참여한 이들은 날씨를 언급하며 감격하고 또 감격해 했다.아펜젤러선교사 순직 기념비는 어청도에서 풍경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팔각정에 자리를 잡았다. 아펜젤러선교사의 순직을 기념하는 비가 어청도에 세워진 것은 아펜젤러 선교사가 바로 이 앞바다에서(어청도 서북방 2-3해리 지역=3.7~5.5km 지점) 여학생을 구하려다 익사로 순직하였기 때문이었다. 남을 위해 살다 간 아펜젤러 선교사다운 생애였다. 따라서 한국인으로서 그를 기념하기 위한 기념비는 어청도에 세워지는 것이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이날 열린 ‘아펜젤러 순교 기념비 제막식’은 오후 4시 30분에 치러졌다. 감리회 관계자만 아니라 어청도 마을 주민도 함께 했다. 특히 400여명이 사는 어청도에는 감리교회가 없기에 타교파 교인들, 그리고 마을 이장 등이 참석해 이 순교자의 기념비를 통한 감동을 함께 나누는 기회가 되었다. 호남특별연회 총무인 고종수 목사의 사회로 시작된 감사 예배는 최호권 목사(전북서남지방회 감리사)의 대표 기도, 이석렬 장로(장로회호남특별연회연합회 회장)의 성경 봉독(요 15:12~14)으로 이어졌고, 김필수 감독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했다.말씀을 전하고 있는 김필수 감독김 감독은 "세계에 선교사를 가장 많이 파송하는 대한민국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 자신과 심지어 자신의 가족들의 인생을 모두 바쳐서 이 땅에 복음을 전한 선교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 땅과 민족을 향한 선교사들의 사랑과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한국 교회의 영적 성장과 부흥의 결실은 결코 맺어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서두를 꺼냈다.이어 김 감독은 아펜젤러 선교사의 빛나는 업적을 설명했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인천에 첫발을 내디딘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는 조선 최초로 서양 아이를 낳았고, 후에 자녀들도 조선을 위해 헌신했으며, 아펜젤러 선교사는 정동교회와 내리교회, 배재학당을 설립해 복음 전파와 교육 보급에 큰 공을 세웠음을 언급했다. 이어 선교사는 성경을 번역해 말씀 보급에도 큰 공헌을 했으며, 죽음의 순간에서도 다른 이를 구하고 자신은 순교하기까지 했다.김 감독은 "선교사님은 죽는 바로 그 순간까지도 이 땅과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신의 생명조차 아끼지 않았으며, 이는 친구를 위해 자기의 목숨을 버리는 사랑을 가장 큰 사랑이라고 한 예수님의 말씀과 사랑을 보여준 자신의 목숨을 버려 보여준 것"이라며 "이 땅의 민족을 친구 삼고, 이 땅의 민족을 위해 죽은 아펜젤러 선교사님의 그 사랑을 반드시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힘주어 말했다.아울러 "이 기념비를 제막하는 것도 단순한 하나의 행사가 아니라, 바로 그 사랑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함"이라며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것처럼, 아펜젤러 선교사님께서 보여주셨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도 사랑의 계명에 따라 사랑의 실천, 이 귀한 신앙의 본보기를 우리 마음 깊숙히 간직하고 우리 삶 가운데에도 일어나길 바란다"라고 전했다.김 감독의 말씀을 마치고 내외빈의 속개에 이어 축복 기도로 감사 예배를 마친 후 곧바로 제막식이 거행되었다.임융봉 목사(호남제일감리교회)가장 먼저 임융봉 목사(교육사업위원장)의 경과 보고가 있었다. 임 목사는 아펜젤러 선교사의 순교(임 목사는 순교라고 부르겠다라고 선언했다)부터 기념비 제막까지의 과정을 다음과 같이 담담히 읽어내렸다.- 1902년 6월 11일 아펜젤러 순교 사건은 1902년 6월 11일 오전 12시 인천항에서 출발한 구마가와마루가 마고가 오후 11시 경 목포에서 올라오던 같은 회사 소속의 기소가와마루와 와 충돌하면서 발생했다. 충돌 위치는 어청도 서북 2~3리 약 3.7에서 5.5km 지점이었으며, 구마가와마루는 우현 선두에 큰 손상을 입어 약 2분여 만에 바로 침몰하였다. 이렇게 충돌과 침몰에 이르기까지 과정이 너무나 갑작스럽기에 승객 46명 중 18명이 미처 탈출하지 못하였고, 아펜젤러 선교사도 이러한 과정에서 순교하였다.- 감리교회 신앙유산 재조명, 교육적 효과 증대, 감리교회 선교 유적지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어 아펜젤러 선교사 순교 120주년 맞아 이만열 교수, 이덕주 교수의 제안과 본부 선교국과 호남특별위원회 주관으로 설치 작업 진행하였다.- 아펜젤러 선교사 순교 후 120년이 지난 후에야 순교 현장 어청도 앞바다 내려다보이는 가장 좋은 장소를 지역 주민 대표 또 이장님과 지역 주민의 도움 아래에 세워지게 되었던 표지석이 세워지기까지 해수부, 문화체육관광부, 국방부, 군산지방해양수산청, 군산시청, 옥도면 어청도리를 거쳐야 할 행정적인 과정과 자문을 얻었으며 하루에 한 번 왕복하는 선편으로 표지석을 제작한 운반과 작업하는 일, 특히 태풍으로 인하여 배가 바뀌어서 일정을 변경한 적이 여러번이 있을 정도였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설치할 수 있었다.임 목사는 “제작비는 300만 원 소요되었고 실무는 자신이 맡았다”라며 “이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우리 모두가 신앙의 유산을 이어가기를 바란다.”라고 마무리했다.감신대 소요한 교수이어 소요한 교수(감신대)가 순직 이야기를 간략하게 전했다. 소 교수는 “이곳에서 서북방향으로 저 앞에 보이는 외연도까지의 거리가 약 10km 정도 되는데, 아펜젤러선교사님은 이 섬들 사이인 2~3해리 거리에서 해상 사고로 순직하셨다”라며 “배에서 해상 사고를 자주 직접 언급하셨던 아펜젤러 선교사님께서 배가 충돌 후 2분만에 가라앉았을 시간에 빠져나오지 못할 분이 아니었지만, 남을 위해 희생하셨던 그 분의 삶이 그대로 이어졌기 때문”이라고 숭고한 삶을 기렸다. 아울러 소 교수는 “따라서 이 기념비는 이 장소가 제대로 맞는 위치에 세운 것이고, 이 제막식은 굉장히 의미가 있다"라고 장소에 의미를 담았다.이 이야기를 마친 후 그토록 기다리던 제막식이 있었다. 김필수 감독, 감리회 본부 선교국 총무 태동화 목사, 임융봉 목사, 고종수 총무, 유경동 감신대 총장, 최호권 감리사, 박남철 감리사, 정예현 본부장, 남준우 감리사, 이석렬 장로, 김종택 장로 등이 줄을 잡고 가렸던 막을 거두고 모두가 열린 기념비를 박수로 축하했다. 기둥교회 하주열 목사는 힘찬 뿔나발 연주로 이 제막을 함께 축하해 주었다.뿔나발을 연주하고 있는 하주열 목사그리고 비문과 관련해 남선교회호남특별연회연합회 회장인 김종택 장로의 낭독이 있었으며(아래 전문 게재), 태동화 총무, 이건수 목사(호남특별연회 감사)의 축사와 유경동 총장의 격려사로 이어졌다.태동화 총무태 총무는 "아펜젤러 선교사가 44세에 순교한 1902년에 우리는 홍승하 선교사를 해외에 파송하게 되었고, 그 후 지금까지 우리는 약 2,400여 명의 선교사를 파송했으며 현재 81개국 1,285명이 현직 선교사로 사역하고 있다"라며 "이 기념비는 우리가 기억으로만 그들을 되새길 수 없기 때문에 중요하며. 첫 선교사님의 귀한 순직의 헌신을 되새겨 한국교회가 어렵고 또 사회적으로 그렇게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 이때 희생과 섬김, 우리 모두가 하나의 밀알이 되는 그런 자세로 살아간다면 오늘 이 제막식이 더 큰 의미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이 순직을 마음 속에 새기고 섬기는 마음으로 나아가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이건수 목사이건수 목사는 "별은 발광체가 아니라 반사체이지만 그 역할을 다할 때 더욱 빛이 나는 것으로 별은 낮에도 있지만 밤에만 볼 수 있는 것처럼 아펜젤라의 선교 역사는 빛나는 별임이 분명하다"라며 "이 빛을 밝히는 연결고리가 오늘 제막식을 통해 여기까지 이어졌고, 우리의 연결고리를 통해 등잔의 빛을 밝히기 위해 기름을 준비하듯 김필수 감독님은 충분하셨다"라고 공을 치하했다.그리고 "안타깝게도 아펜젤라 선교사님의 시신이 깊은 바닷속에 수장되어 보이지 않는 것은 모세의 무덤으로 우상화되지 않게 해서 후손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전수케 하고, 그들의 신앙은 견고케 하신 것과 같이, 우리는 이 일이 그것을 보고 우리 후대들이 하나님을 기억하고 믿음을 견고하게 의뢰하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라며, "오늘 순직 제막비의 주인공은 여기까지 해 오신 에벤에셀의 살아계신 하나님이고, 아펜젤러도 김필수 감독님도 여기는 우리 모두도 빛나는 별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모두가 밝은 빛을 발해야 한다. 이 모든 일을 여기까지 사고 없이 못내 가슴 졸이며 말 없이 수고하신 우리 모든 스태프들에게도 감사드린다. 우리가 별이다"라고 감동적으로 축사했다.
유경동 총장
유경동 총장은 "아펜젤러 선교사님의 죽음으로 한국의 많은 교육기관뿐만이 아니라 지금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많은 선교사님들로 열매를 맺게 되었다"라며 "예수님 말씀처럼 우리가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면 이 제막식은 의미가 없는 것이고, 저희가 저희 생명을 미워하면 그다음에 남은 것은 주님을 섬기는 것밖에 없다. 여기 모든 분들이 지금 우리에게 붙어 있는 생명을 사랑하지 말고 끝까지 주님만 사랑하면 제2 제3의 아펜젤러 목사님의 정신을 저희들이 이어받게 될 줄 믿는다"라고 말했다.
제막식은 기념 촬영과 함께 마쳤고 둘째날인 10월 4일에는 ‘아침경건회’와 함께 ‘아펜젤러 선교사 알기’라는 순서를 통해 예배와 ‘아펜젤러 선교사의 선교 사상과 사역’에 관련해 강의를 듣는 시간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강의에는 소요한 교수가 맡았다.■ 순직 표지석 비문헨리 아펜젤러 목사(1858-1902)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헨리 G 아펜젤러 (Henry Gerhard Appenzeller 1858~1902 06.11)는 미국감리교회의 한국 개척 선교사로 1885년 4월 5일 부활절에 내한하였다. 배재학당을 세워 기독교 정신이 깃든 근대교육 발전에 앞장섰고 정동제일교회, 중앙교회 등 교회 설립과 더불어 각 지역을 순행하며 복음의 씨앗을 뿌려나갔다. 또한 문서선교와 계몽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며 우리 민족과 함께할 그리스도의 사도로 선한 영향력을 끼쳤다. 그러나 1902년 6월 11일 한국어 성경 번역을 위해 목포에서 개최되는 번역자 회의에 참가차 배를 타고 가던 중 밤 11시경 이곳 어청도 서북 바다에서 선박 사고로 안타깝게 순직했다. 당시 함께 승선했던 생존자에 의하면 아펜젤러는 한국인 동료 조한규와 정신여학교 학생을 구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자신의 안전을 돌보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 곁을 떠난지 1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그의 삶과 가르침은 한국교회와 사회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더불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주어진 선교적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그 고귀한 정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가운데 유효한 가치로 남아 숨쉬고 있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아펜젤러 선교사의 숭고한 정신을 기념하고 이를 후대에도 계승하고자 온교회와 교인들의 마음을 모아 이곳 어청도에 순직 표지석을 세운다.
2022년 6월 11일 기독교대한감리회
순직 표지석
출처 : 웨슬리안타임즈(http://www.kmc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