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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목회’로 세종시에서 감리교회 위상 높이는 권균한 목사를 찾아

작성자
대학대표관리자3
등록일
2024-02-16 11:45:37
조회수
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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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목회하는 동안 네 번째로 이 교회를 건축하면서 매월 5억씩 건축비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자 입에서 ‘죽여 달라’는 기도가 나왔습니다. 업자에게 맡기지 않고 직영했기 때문에 신경써야 할 일이 한 둘이 아니었죠. 건축에 대한 모든 걱정과 해결은 목사의 몫이었습니다. 잠 못 이룬 밤이 헤어릴 수 없을만큼 많았죠. 도저히 기도하지 않고는 배겨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기도하는 저에게 하나님이 그때그때 답을 주셔서 헤쳐 올 수 있었습니다. 어느날은 “은행에 가 보라”는 말씀을 주셔서 갔는데 누군가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죠. 하나님은 그렇게 기도할 때마다 응답해 주셨어요. 여기까지 온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014년 11월 9일 세종시 도담동의 상가로 이전하여 예배 드린 후 2017년 6월 현재의 예배당을 봉헌하고 코로나 이전까지 장년기준 900명 출석의 교회로 부흥시킨 권균한 목사(감신대 83학번)의 고백이다.

감리교신학대학교 제24대 총동문회장 이기우 목사는 취임과 동시에 ‘찾아가는 심방’이라는 주제로 곳곳에서 ‘목숨 걸고’ 열정적으로 목회하는 동문들을 찾아 격려하고 동문들에게 소식을 알리고 있다. 이는 동문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이루면서 서로의 목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자는 의도가 들어있다. 드러나지 않게 훌륭한 모습으로 목회를 감당하는 동문들의 소식을 알려서 목회지가 풍성해지도록 일종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는 기획이다.

중앙연회 포천지방 일동교회 정학진 목사를 시작으로 하여 서울남연회 강서동지방 배광교회 이학성 목사를 찾았고, 세 번째로 남부연회 세종지방 물댄동산교회 권균한 목사를 찾았다. 이 심방에는 화합상생위원장 조장철 목사(한성교회)와 서기 채교열 목사(경신교회), 그리고 기자가 동행했다.

확연한 봄날의 기운이 느껴지는 지난 9일(화) 아침 8시, 감람교회에 모여 함께 출발한 일행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10시 20분경 물댄동산교회에 도착했다. 세종시에 첫 번째로 방문한 기자는 도시가 참 정갈하다는 단순한 느낌을 가지고 교회로 들어섰다. 그런데 총동문회장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는 권 목사에게서 세종시에 대한 일반 정보를 듣고 마치 ‘딴 세상’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더불어 교회 개척과 목회 이야기를 들으면서 ‘별천지’에 왔다는 생각이 강하게 밀려왔다. 이 생각은 오후에 세종시를 잠시 둘러보면서 확신으로 굳어졌다.

우리나라 중앙 내륙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는 세종시. 옛날부터 행정구역이 차령산맥과 금강을 경계로 하여 전의, 연기, 금남 지역으로 나뉘어져 발전해 오다가 교통이 발달하면서 통합되었다. 현재 1읍 9면 18동(법정동)으로 조정되었고, 동쪽은 충청북도 청주시, 서쪽은 충청남도 공주시, 남쪽은 대전광역시, 북쪽은 충청남도 천안시와 접하고 있다. 권 목사 말에 의하면 현재 인구는 약 40만 명인데 1년에 5만 명씩 증가하고 있다. 여전히 개발될 땅이 있다고 했다. 중앙의 행정기관들은 약 70%가 입주했고, 앞으로 국회가 이전해 올 예정이다. 시내 곳곳에서 빌딩들이 건축 중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권균한 목사의 ‘능력목회’

2012년 7월 1일부로 세종특별자치시가 공식 출범하고 그해 12월 중앙행정기관 1단계 이전을 시작으로 2014년 12월 중앙행정기관 및 국책연구기관 3단계 이전이 완료되기 직전인 2014년 11월 충남 공주에서의 목회를 마감하고 세종시에 상가를 얻어 예배드리면서 권 목사의 세종시 목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런데,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권 목사는 세종시에서 첫예배를 드리기 이전인 2014년 8월 10일 교회명칭을 '물댄동산교회'로 변경했다. 교회 이름을 위해 기도하고 있던 권 목사에게 1년 6개월 후 새벽에 음성이 들렸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이름이 ‘물..댄..동..산’이었다. 마침 교회 옆에 하천이 흐르고 동산이 있어 ‘하나님의 계시’라고 했다. 교인들도 이 이름을 좋아한다고 했다. 교회 이름이 좋아 등록한 교인 가정도 10가정이나 된다고 했다.

그리고 이어 10월 5일 성전건축위원회를 조직했다. 당시에는 공주에서 목회하고 있던 시절이다. 공주에서 목회하며 도시건설의 초기단계인 세종시에 교회를 건축하고자 했던 것이다. 당시 주변에서는 ‘무모한’ 도전이라며 모두가 말렸다고 한다. 공주의 안정된 교회를 포기하고 장래가 보장되지 않은 또 다른 개척에 혀를 차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권 목사에게는 남다른 영적인 안목이 있었던 셈이다. 세종시의 앞날을 내다 보고 일찌감치 교회 이전을 실천해서 오늘의 모습을 일군 권 목사에게 목회철학을 물었다. 갑자기 던진 질문에 단 1초도 망설임없이 돌아 온 답은 ‘능력목회’였다. 목사가 기도하고 설교하는데 능력이 나타나야 영적 권위가 선다는 것이다. 아픈 성도를 위해 기도하는데 낫는 은혜가 나타나지 않으면 답답함을 느낀다고 했다. 그래서 그 성도가 나을 때까지 기도한다고 했다. 어떤 경우는 A성도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데 그 옆에 있던 B성도의 질병이 해결되기도 했단다.


권 목사의 목회는 철저히 성경 중심이다. 초대교회의 긍정적인 모습을 회복하려고 애쓴다. 예수의 사역을 중심으로 하나님나라를 가르치고, 기도하여 능력이 나타나며, 힘써 선교하는 믿음의 공동체를 일구기 위해 ‘죽을 각오로’ 새벽부터 목회에 올인하고 있다. 신학교 시절 귀가 따갑게 들었던 ‘냉철한 머리와 뜨거운 가슴’을 유지하면서도 ‘뜨거운 가슴’으로 하나님 마음에 합한 목회가 되기 위해 새벽기도에 주안점을 둔다. 기도의 응답도 주로 이 시간에 주어진다.

감신을 졸업하고 1988년부터 목회를 시작한 권 목사는 도봉교회 출신이라는 인연으로 1989년 9월 3일 서울연회 도봉교회(이광호 목사, 당시 김종훈 목사)가 창립 20주년을 기념하여 공주시 신관동에 600만원 보증금에 월세 20만원이라는 조건으로 공주동부교회(→충남중앙교회→우리들교회→물댄동산교회)를 창립하면서 초대 담임자가 되었다. 그런데 목사 안수를 받던 1991년 5월 성전건축위원회를 조직하고 본격적으로 성전건축에 나섰다.

20일씩 5차에 걸쳐 100일 동안 성전대지구입을 위한 특별새벽기도회를 하고 1995년 4월 성전부지 398평을 구입했다. 그해 7월 성전기공예배를 드리고 이듬해인 1996년 3월 입당예배(110평)를 드렸다. 그 후로 공주에서 두 번의 성전건축을 하고 세종에서 네 번째 성전건축을 한 것이다.

당시 시(市) 관계자들이 세종시를 대표할만한 교회가 하나 쯤은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제일 큰 부지(1,200평)를 만들고 분양했는데 그것을 잡기 위해 “네 입을 크게 열라”고 하신 성경의 말씀을 기억하고 기도하면서 그 땅을 차지한 것이다. 그때 손에 쥐고 있던 교회 재무부 통장의돈은 100만원이 전부였다. 그런 권 목사에게 하나님은 또 다시 음성으로 답을 주셨다.

“믿..을..지..니..라”

이 다섯 글자를 붙들고 오늘의 모습을 이루기까지 ‘사생결단’의 각오로 달려온 것이다. 그렇게 오늘의 ‘기적’을 일군 덕분에 세종시에서 감리교회 위상이 높아졌다고 한다. 세종시에 많은 교회들이 입주해 있지만, 대부분이 상가교회라고 했다. 자기 건물을 가진 큰 교회이며, 선교활동도 탁월하게 진행해 왔기에 지역에서 감리교회 위상이 높아졌다. 현재 세종시에는 종교부지가 없고, 있다 해도 비싸기에 살 수 없다.

권 목사가 현재의 교회 부지를 받고 건축을 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공주서지방에 속해 있던 권 목사가 현재의 자리에 교회를 세울 수 없는 형편이었다. 세종시 안에 있는 교회에 종교부지의 우선권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종시 외곽에 부지를 알아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새벽에 기도하는 권 목사에게 하나님께서 “양...화...교...회”라는 이름을 들려 주셨다. 그래서 그 교회를 서슴없이 찾아갔고 그 교회 담임자에게 들었던 교회 사정이 이랬다.

세종지방에 속해 있으면서 노년들만 있어 종교용지를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사정에 있던 형편이었다. 그래서 합병하기로 했고 그 인연으로 현재의 종교부지를 신청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양화교회를 담임하던 김명관 목사는 통합된 교회에서 부담임목사로 사역하다가 2013년 9월 영월서지방(현 새영월지방) 문곡교회 담임으로 이임해 갔다.

지금도 건축하라면 언제든지 신나게 감당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권 목사에게도 네 번째 건축과정에서는 너무도 힘든 나머지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세 차례나 기도했다. 건축비 절감을 위해 직영으로 공사를 했는데, 당시 교인들이 볼 때 ‘이루어질 수 없는 꿈’ 같은 건축이었기에 교회의 장로마저 이사할 뜻을 내비칠 정도였다. 그런 장로들을 향해 권 목사는 “그냥 있어만 달라”고 달래면서 건축과 씨름했던 것이다. 목사의 고독한 ‘싸움’으로 영적인 탈진을 경험하면서 하나님 앞에 죽음으로 호소한 것이다.  

은퇴를 2년 앞둔 이기우 목사는 자신의 목회생활을 돌아볼때 아쉬운 점이 있다면서 후배들에게 들려주고픈 말이 많은데 권 목사의 이야기가 많은 부분 겹친다며 공주와 세종의 목회 기간에 권 목사가 겪었을 경험을 십분 이해한다고 공감했다. 그러면서 교회를 건축한다는 일이 참으로 어려운데 네번 씩이나 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며 치하했다. 

세 번째 건축 과정에서는 부도를 맞아 4개월 동안 건축이 중단되었던 적이 있었는데, 교인들 중 누구도 문제 삼지 않았다고 했다. 문제 삼는 교인이 없다는 점에서 한편으로 목사가 소신있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면을 들여다 보면 건축의 모든 것을 목사가 감당해야 했다는 아픔이 있다. 매월 5억이라는 건축비를 1년 6개월 동안 만들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너무 힘들어 죽여 달라는 기도, 아니 하소연을 한 것이다.

기도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그때 무릎 꿇은 권 목사에게 하나님은 “은행에 가 보라”는 음성을 주셨고 말씀에 순종하여 은행에 갔더니 방법을 알려 주셔서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런 경험을 수 차례 하면서 건평 2,300평의 네 번째 건축을 완료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이 목회자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권 목사의 산간증이었다. “목회는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계”라고 강조하는 권 목사의 말은 철저하게 경험에서 나온 살아있는 간증이었다.

네 번의 건축 과정에서 권 목사 부부는 철저하게 자신들을 하나님께 드렸다. 건축을 결행할 때마다 사모가 먼저 나서서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데 우리가 먼저 아파트 한 채를 드려야 한다”며 그에 해당하는 헌금을 했다고 한다. 세 차례, 곧 아파트 세 채를 그렇게 건축헌금으로 드리고 나니 교회에서 아파트를 목사관으로 구입해 주었다고 한다.

사모와 관련한 또 하나의 간증은 권 목사가 죄어 오는 건축비 마련에 대한 부담감으로 잠을 못 이룰 때 옆에 있던 사모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잠잘 것을 주문할 때 권 목사는 속으로 ‘이런 상황에서 그대는 잠이 오나’ 하는 생각에 야속했다고 한다. 그때 사모의 입에서 나온 말은 “주무시고 새벽에 가서 하나님께 말씀 드려요.” 였다고 한다. 이 말을 전하면서 권 목사는 ‘명언’이라고 했다. 옆에서 이 말을 들은 채교열 목사가 “사모님 믿음이 더욱 훌륭하시네요” 했고 일행은 웃음으로 공감했다.

세종시라는 특별한 환경 때문인지 등록하지 않고 주일예배에만 출석하는 이들이 약 200명이 넘는다고 했다. 그들은 관리(주소,연락,심방 등)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코로나가 극복되어도 출석한다는 보장이 없다며 목회자의 심정으로 안타까움을 드러낸 권 목사는 더 이상 코로나에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코로나 이전에 약 900명(장년 기준) 출석하던 교인들이 현재는 약 500명 정도 대면예배에 출석하고 있다고 했다.

권 목사는 코로나가 극심해 모든 종교시설에 예배금지 조치가 내려졌던 2주를 제외하고는 대면예배와 비대면예배를 동시에 진행했다. 그런데 지난 3월부터는 비대면을 완전히 끊고 대면예배에 집중하고 있다. 동영상 예배를 송출하는 것이 어려워서가 아니라고 했다. 비대면예배는 진정성이 떨어지기에 참된 신앙성장과 성숙을 이루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코로나로 인해 예배인원이 절반으로 감소했지만 결산은 오히려 늘었다는 점이다.    

선교, 코로나에서도 멈출 수 없는 교회의 심장

권 목사는 개척 당시부터 선교에도 열정적이었는데 정진권 목사(종로교회)가 추진했던 북방선교회 창립(1998년 10월 10일)멤버로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북방선교회는 오는 3월 15일 한민족선교회로 새롭게 탈바꿈한다. 권 목사는 2000년 8월 교회창립 10주년을 맞아 중국 길림성에 교회를 봉헌했다. 그 전년도에 교육관을 봉헌하여 여력이 없을 법한데도 ‘교회가 선교하지 않으면 사명을 잃는 것’이라는 선교비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20주년 기념으로 중국 장가개에 교회를 또 다시 봉헌했다.

2014년 11월 18일 성전건축에 대한 세종시의 허가를 받고 2015년 4월 5일 기공예배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건축공사를 앞둔 시점에서 남부연회에 참석한 권 목사는 식사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지방 목회자들과 함께 승합차에 탔는데 하필 20년 된 차였다. 히터도 작동하지 않고 이른바 ‘탱크소리’가 나는 폐차 직전의 차였다. 차 안에는 개인용 담요가 있었다. 마음에 쓰라림을 안고 있던 권 목사는 그 교회 담임자를 불러 스타렉스 한 대를 선교용으로 사 주었다. 공주서지방 어천교회(현 윤여인 목사)로 그것이 세종시에서 새롭게 시작한 물댄동산교회 선교의 시작이었다.

그 선교는 코로나로 인해 많은 교회들, 특별히 비전교회가 힘들어 할 때 그 고통에 함께 하는 모습으로 표출됐다. 지방 내 비전교회 선교비 후원을 비롯해 세종시 교육청에 장학금으로, 이웃의 작은 교회 성전토지구입 지원으로, 호서대 신학발전기금으로, 한민족선교회 사무실 리모델링비로, 그리고 투병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후배 동문들을 향한 지원으로 물꼬를 이어 작년 한 해 동안 1억원을 넘겼다. 

흔히들 교회가 어려우면 가장 먼저 끊거나 줄여야 할 항목으로 선교비를 말한다. 그것도 해외선교비가 우선 대상이다. 하지만, 권 목사는 어려울 때일수록 이웃과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는 흘려 보낼 때 더욱 크게 임한다는 것이다.

자랑스런 동문상

권 목사의 간증과 목회 이야기를 듣던 총동문회장 이기우 목사는 “목회를 잘 하고 있는 표상으로 후배들에게 적극 알려 많은 동문들이 목회하는데 영감과 지혜를 줄 수 있어야 한다”면서 “사람의 소리에 따라 가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나아가는 목회의 좋은 실례”라고 했다. 사람의 소리를 듣다 보면 마음이 곯는다며 목회가 극대화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권 목사를 향해 ‘자랑스러운 동문상’에 손색이 없다는 이 목사의 말에 함께 동행한 임원들도 공감했다.

특히 세종에서 목회하며 건축하는 과정을 거치는 5년 동안 한 번도 세종을 떠나지 않고 오직 건축과 목회에 전념했다는 권 목사의 간증을 들은 이 목사는 교단정치에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목회에 전념하여 ‘눈에 보이는’ 성적을 내고 행복한 목회를 하는 모범적인 경우라고 강조했다. 함께 한 조장철 목사와 채교열 목사 역시 동의하면서 2014년 11월 첫예배 후 5년 만에 지방에서 영향력이 제일 큰 교회로 부흥할 수 있었던 제1의 요인은 ‘오직 목회’ 마인드라고 할 수 있다며 자랑스러운 동문임에 틀림없다고 공감했다. 작년 12월, 제24대 총동문회 출범식에서 권 목사가 자랑스러운 동문상을 받은 것이 이유 있는 ‘수상’이었음을 강조한 것이다.

권 목사와 대화를 나누는 중간에 빚이 많은 중에도 선교에 힘쓴다는 말을 들은 이 목사는 두 번 째로 방문했던 이학성 목사를 소환했다. 배광교회도 많은 빚이 있지만 동행플러스나 천사운동, 이웃을 섬기는 바자회 같은 선교에 힘을 쏟으니까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빚도 많이 갚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처럼 권 목사도 건축 빚이 많은 상태에서도 이웃을 섬기고 선교에 힘쓰니 하나님의 은혜가 갑절로 임할 것이라면서 이런 목회를 후배들이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화를 정리하면서 총동문회장 이기우 목사가 권 목사를 위해 축복하는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이 목사는 “권 목사에게 영감과 영력을 주셔서 아름답게 교회를 세우게 하시고 세종시에서 자랑스러운 감리교회로 설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린다”며 “하나님의 섭리로 허락하신 은혜를 맛보고 있으니 더욱 매진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목회와 교회가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원했다. 더불어 신학교에서 배우고 느낀 것에 더하여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체험과 간증의 고백이 있게 하심을 감사한다며 앞으로의 목양에도 하나님의 기적을 계속하여 나타내 주시기를 기원했다. 끝으로 “성령의 은혜를 힘입어 양들을 푸른 초장으로 이끌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능력과 힘을 더하여 달라”고 기도했다.  

조용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시종일관 보인 권균한 목사의 안내로 교회시설을 둘러 보고 세종시에 계획적으로 들어선 행정관청과 여러 건축 현장들을 보면서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살짝 고민한 일행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귀경길에 나섰다. 세종시와 물댄동산교회, 무엇보다 권균한 목사라는 귀한 동문과의 행복한 시간을 가진 것에 대한 보람과 기쁨을 가득 안고 돌아가는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출처 : 웨슬리안타임즈(http://www.kmc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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