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임자들이 필요한 교회 정치개혁의 글입니다...
**[교회개혁 강력하게 시행하자!!]**
**[교회개혁 현실적으로 전환하자!]**
오늘날 개척교회는 수 없이 많다.
그리고 오늘도 계속 세워지고 또 문을 닫고 있는 것이 개척의 현실이다.
그런데 무조건 개척교회 없애자고 외치는 것은 현실적인 개혁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교회개혁과 부흥은 개척교회를 살리는 방향으로 과감히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척교회는 지금 인적 물적으로 거의 아사직전에 있는 교회가 한 둘이 아니다.
그들의 어려움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수 많은 개척교회가 오늘도 문을 닫고 있으며 현재 있는 개척교회 마저도 성장할 수 있는 경쟁력을 잃고 성장할 수 있는 자원도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한국교회는 이미 성장을 멈추었고 이제 점점 하향곡선을 타고 있는 것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교회의 부흥은 이렇게 어려운 개척교회를 외면하고서는 매우 어렵다는 것도 사실이다. 성경적으로 주님의 교회는 본래 하나이다. 개척교회의 어려움은 우리 교회의 문제가 아니라는 편협한 사고는 한국교회가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비열한 사고이다.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려고 한다.
먼저 개척교회와 대형교회 목사들의 사례를 전격적으로 통일하자는 것이다물질적인 통일이 없이 교회의 일치와 개척교회 성장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강력한 대안은 대형교회 교인들을 개척교회에 과감히 파송하는 것이다.그렇다고 대형교회 교인들을 아예 개척교회로 완전히 보내자는 것도 절대로 아니다.
공적 주일예배는 모두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지만 평소에 교회의 활동을 작은 지 교회에 속하게 한다는 것이다. 개척교회와 대형교회가 함께 모여서 공동 주일예배를 드리지만 활동은 작은 지 교회(처소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다.
새벽기도, 수요예배, 지역전도 등 각종 활동은 지역의 소규모 지 교회를 중심으로 활동하도록 하는 것이다.(실재로 어떤 교회는 새벽기도는 가까운 교회로 보내는 교회도 있다. 이것을 다른 부분에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도모임, 집회, 전도, 구제, 봉사 등으로 확대)
이렇게 대형교회들은 자기가 속해있는 지역의 작은 교회들과 실재적으로 연합할 수 있는 전략이 요구된다. 이는 수 많은 작은 지 교회들의 목사와 건물들이라는 막대한 자원들을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성경적으로 본래 교회는 하나라는 것이다. 그래서 대형교회 중심으로 공동연합 주일예배를 시행하되 지 교회들을 강력하게 물적 인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수 많은 개척교회들을 조금만 도와주면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데도 최소한의 물적, 인적 자원이 없어서 도태된다면 한국교회 전체의 크나큰 손해이다. 그러한 소규모 교회들을 잘 활용하는 지혜가 오늘날 절실히 요구된다는 것이다.(대부분의 교회는 주일용이 되었다. 평일에도 교회의 건물이 활용될 수 있는 것은 지 교회들을 지원하는 방법 밖에 없다)
대형교회는 과감히 내 교인이라는 의식을 버리고 개척교회에 성도들을 파송하는 강력한 개혁을 실천하면서 개척교회도 부흥하게 하고 대형교회도 발전하게 하는 양 방향으로 돌아서야 한다. 수 많은 개척교회들이 부흥한다면 또 그들이 모두 공동으로 모여서 주일예배를 드린다면 지금의 대형교회보다 몇 수십 배 많은 성도들로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대형교회는 자신들이 속한 개척교회가 남의 교회라는 의식을 벗고 함께 발전하고 부흥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형교회가 스스로 셀 교회의 조직을 완벽하게 갖추려고 한다면 엄청난 비용이 필요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교회가 실패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교회는 교단을 초월해서 모두가 함께하고 성장하는 교회를 위해서 모두가 나서서 개혁하는 교회로 나아가야 한다. 대형교회와 작은 교회가 서로 분리된 관계가 아닌 실제적인 연합으로 나타난다면 그 파워는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갖게 될 것이 분명하다.
대형교회도 대형교회 스스로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 현실이다.
잘 되는 몇몇의 교회만 성장하는 대형교회가 현실이 아닌가? 그리고 나머지는 대부분 외적인 모습만 갖추고 실제적인 교회의 활동으로 나타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우리의 2세대가 교회의 구성원이 될 때면 지금의 1세대가 중심인 대형교회도 약화될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교회의 청소년들이 줄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형교회의 교인들은 한 도시의 모든 곳에 포진하였기에 그들이 자주 모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구역을 정해서 예배를 드리게 하지만 실제적으로 형식적인 모임에 그치고 있다.
본인이 요구하는 것은 이렇게 대형교회의 구역을 포기하고 지역의 작은 지 교회들과 개척교회를 중심으로 작은 세포적인 교회들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인들을 가까운 지역의 작은 교회에서 자주 모이게 하고 기도하게 하고 말씀을 듣게 하면서 선교의 전초기지로 삼자는 것이다. 물론 더 이상의 개척교회는 막아야 되는 것은 사실이다.(신학생 배출 자제)
지금의 수 많은 개척교회도 스스로 통폐합하는 의지가 절실히 필요하다.(사례가 통일되면 가능)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대형교회 목사들의 중요한 결단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들의 대형교회가 자신이 속한 지역의 작은 교회들을 수용하기 위해서 자기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것이 마치 대형교회의 해체로 보이는 것 같으나 결과적으로 지역전체가 모이기에 초대형교회가 형성될 것이다.(먼저 시작하는 교회가 유리)
대형교회가 큰 뜻을 가지고 자신의 지역에 있는 개척교회들을 과감히 수용해야 한다. 대형교회 교인들은 절대로 이 큰 뜻을 버리고 작은 교회에 완전히 소속되어 대형교회를 떠나 스스로 해체하지 못할 것이다. 큰 비전을 가진 대형교회와 교인들이라면 큰 뜻을 이루는 것을 목적을 두고 실천할 것이다. 그들은 오늘날과 같이 사분오열의 교회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목사들의 강력한 결단이 먼저 요구된다.
목사 사례의 통일 그리고 목사가 한 교회에 죽을 때까지 있는 것을 바꾸고 임기를 정해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한 지역에서 여러 교회들의 목사들로 교육을 받는다면 이는 성도들에게도 매우 유익한 것이 될 것이다. 그 임기를 정하는 것은 목사들이 모여서 정하면 된다.
한 예로 같은 지역에서 목사의 처소교회 임기를 2년으로만 잡아도 처소교인들은 2년마다. 새로운 교회의 목사를 만나서 특색 있는 교육을 받을 것이다.(3년. 혹은 4년 등)
목사들도 자신이 갖고 있는 특기를 세상 떠날 때까지 수 없는 교회에서 봉사하게 될 것이다. 지금처럼 한 목사가 죽을 때까지 재탕 삼탕으로 교육하는 설교는 심각한 영양실조 걸린 교인들을 만든 것이다.
이렇게 교회의 연합이 가시화된다면 모든 성도들은 질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어서 좋고 목사들은 여러 처소교회를 통해서 많은 교인들을 삶 속 가까이서 실제적으로 가르치고 양육할 수 있어서 좋은 것이다.
이렇게 하나 되는 교회가 된다면 사례의 불균형도 없어질 것이고 부분별한 신학생 배출도 없을 것이다. 지역의 교회들이 지역에 맞게 성직자를 배출하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성경적인 교회는 무한 경쟁의 논리가 아니다. 성경은 이미 하나라고 선포한다. 그러므로 갈라진 교회가 하나 되고 함께 발전하려는 것은 오늘날 이 시대의 교회개혁의 중요한 과제이다. 모두가 잘 되는 길인데 이러한 것을 반대한다면 그들은 누구인가?
대형교회 목사가 자신이 갖고 있는 명예와 그리고 안정된 사례와 지위로 이러한 교회의 하나 되는 것을 포기한다면 이는 엄청난 영적인 착오이다. 우리는 교회가 하나 되면 선교가 폭발한다는 것을 익히 잘 알고 있다. 성령의 역사는 분열보다 연합으로 하나 되어서 함께 하는 가운데 모두가 세움을 받기를 원하신다.
대형교회 장로가 자신의 지위와 명예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를 살리는 것을 포기한다면 이는 영적으로 심각한 이기주의 신앙이 될 것이다.(감투를 벗자)
개척교회와 작은 교회들이 연합하지 않고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교회의 작은 재산을 자기의 것으로 알고 내 교회라는 사고를 끝까지 가지고 버틴다면 먼저 작은 교회들이 경쟁에서 밀려서 도태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공동의 전략이 오늘날 교회에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교회의 개혁에 교인들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목사사례 통일하자는데 교인들이 반대하겠는가? 작은 교회도 주님의 교회이기에 우리가 함께 하자는데 대형교인들이 반대하겠는가? 적어도 같은 교파 안에서 같이 하나님께 주일 날 예배드리자고 하는데 교인들이 반대하겠는가?
우리는 현실을 인정하고 교회의 개혁을 실천해야 한다. 교회가 개혁되어 부흥하면 절대로 하나님은 그 나라를 망하게 하지 않는다. 그 나라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가 사분오열 된 것을 스스로 정당화하고 이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말한다면 하나님이 임으로 이 나라를 심판한다면 누구도 변명하고 핑계치 못할 것이다. 이제 교회 건물 짓는 것에서 교회일치로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교회의 분열은 주님의 몸이 분열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영적으로 범죄이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이 나누어진 것이 범죄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들이 범죄 한 대가가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는 한국과 북한의 통일을 바라보기 이전에 한국교회가 먼저 하나 된다면 하나님은 이 나라를 다시 회복시킬 것이며 싸매주실 것이다.
본인이 아는 개척교회의 모습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 교회는 개척을 시작했는데 교인들의 수는 적고 그래서 그 목사의 가족들이 도와서 겨우 운영하고 있는 개척교회이다. 십년이 지나도 여전히 혈육이기에 목사의 가족들이 돕고 있었다는 것이다.(십일조를 보내든지 등등)
심지어 어떤 개척교회는 형제들이 교회에 나가지도 않는데 가족이기에 목사와 교회를 도와주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이처럼 세상의 혈육관계 때문에 교회를 도와주고 목사를 도와주는데 하물며 영적인 교회가 다른 성도들이 세운 작은 교회들이 심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도 나 몰라라 한다면 정상적인 것인가?
천국에 가면 하나님이 평가하겠지만 그래도 예수 안에서 예수의 피로 된 자들이 육적인 피로 된 자들보다 못해서야 되는가? 세상에서 불러낸 성도들은 영원히 살 영적인 가족이다.
당신이 만약에 작은 교회를 이 세상에서 몰라보고 그들을 무시했다면 하늘에 가면 당신은 영원히 그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잠간 사는 세상에서도 형제들이 함께 살려고 노력하는데 하물며 영원히 가족이 된 자들이 세상에서 나 몰라라 한다면 정말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와 한 자매가 된 것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주님은 나와 함께 하는 자가 내 자매요 모친이며 형제라고 가르치지 않았는가? 대형교회와 작은 교회가 정말로 같은 영원한 자매와 형제가 되었는가? 열매로 알 것이다.
교회개혁 말로만 되지 않는다고 본다.
그래서 대형교회에 강력히 요구할 것이다.(물론 지역의 작은 교회에게도) 어려운 처소교회가 방관하는 자세에서 적극적으로 대형교회에 직접 요구할 것이다.
이일을 위해서 먼저 대형교회와 지역교회의 모든 재산을 공동으로 합법화하는 것이다. 개인의 소유나 집단의 소유가 되면 결코 하나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재산을 공동으로 관리하되 지 교회의 목사직분을 보장해주는 것과 함께 새로운 질서를 위해서 규범을 정해야 한다.
위에 소개한 것 같이 주일공동 예배로 드리고 나머지 교육이나 전도나 선교나 기타 집회 등은 지역교회에서 갖도록 하는 것이다. 매일 목사들이 바쁘게 할동하게 될 것이다. 지금과 같이 주일목사에서 매일목사가 된다면 교인들은 영적으로 큰 도움을 얻을 것이 분명하다.
같은 장로교라면 장로교 교육을 시키면 된다. 현존하는 모든 성경공부를 활성화하는 교육의 집중적인 노력도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 모든 기존의 교육을 전면 개방하는 것도 필요하다.
인터넷이나 방송을 통해서 실재적인 교육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인기있는 목사들이 안방을 차지하고 있는 기독교 방송보다 모든 교인들이 교육이 되는 방송으로 전환을 해야 한다.
크로스웨이, 베델 성서연구, 성경의 맥, 3927 성경연구, 프립셉트, 각종 세미나, 주제별 성경연구, 책별 성경연구 등 모든 현존하는 성경공부를 전면 개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방송은 교육에 비중을 높이고 신앙의 활동은 지교회에서 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인들이 좋아하는 사탕같은 방송보다 목사와 학자들이 실제적으로 요구하는 교육이 이루어져야한다.
기독교 방송이 무슨 코메디 방송도 아니고 큰 교회와 목사를 자랑하는 인기방송도 아닌데 그들이 단골이 된 것이 사실이다. 사람들의 봉사를 자랑하는 방송도 아니다. 이런 방송은 세상방송들이 하고 있다. 마치 세상의 방송과 기독교 방송의 차이가 없다면 무슨 차이가 있는가?
방송으로 내 보내는 것이 찬송의 목적이 아니다.
찬송은 하나님께 시간적으로 드리는 것이다. 그런데 찬송을 방송하고 연주회를 방송하는 행위는 기독교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찬송은 성도들이 지 교회에서 하나님께 드리게 되는 것이며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다. 신앙활동을 TV에 맡겨서야 되겠는가?
찬송의 목적이 오직 하나님께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드릴 때 하나님이 받으시고 그것으로 끝나는 성격이다. 사람들이 들으라고 찬송을 하고 방송으로 내보내는 것이 아니다. 복음송은 가능하나 찬송은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